예산편성 엄정히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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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 시·도의 내년도 예산이 편성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미 2조7천7백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마련, 이달 말 시정자문회의 의견과 총리실 심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다. 나머지 시·도 예산도 내무부의 심의와 승인을 앞두고 규모와 골격을 짜고 있는 중이다.
서울을 제외한 시·도 예산의 윤곽은 조만간 밝혀지겠지만 대체로 서울시 예산의 3배 가까이 될 것으로 보여 서울을 포함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10조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짐작된다.
10조원이 넘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지금 국회에서 한창 심의중인 19조3천억원에 이르는 정치예산의 절반이상의 엄청난 규모다.
정부예산은 3백명 가까운 국민대표가 밤을 새워가며 심의를 거듭하고 있는데 시·도 예산은 국민의 실질적인 사전, 사후적 견제나 통제 없이 짜여지고 집행되고 있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 서울시는 그나마 시민의 공감과 시정 자문회의의 의견청취 등 형식적인 요식 행위라도 밟는 시늉을 내고 있으나 나머지 시·도는 그나마 생략하고 몇몇 공무원들이 둘러앉아 주무르고 있어 「고삐 없는 예산」이라는 지적과 함께 갖가지 부작용과 폐해를 내재하고 있다.
이는 한창 물의를 빚고 있는 5공 비리의 무절제했던 지방예산 남용과 낭비에서도 익히 알 수 있다.
국민이 땀 흘러낸 세금을 납세진도 모르게 권력자의 저택 확장과 생가복구, 유지비에 물 쓰듯 썼고 지사와 시장이 자신의 영달과 아첨을 위해 농장에 포장도로를 닦아주고 도비로 심어준 나무를 시비로 되사주는 희화와도 같은 예산집행을 일삼았다.
2백억원 가까운 지방비로 새마을 신문을 사주고 영종도개발 등 특정인 지원사업에 불법 전용한 것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여소 야대로 국회의 지위가 행정부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정치인의 입김이 세어진 요즘의 상황에서 예산의 무절제한 편성과 집행의 우려와 가능성은 5공 때에 비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잠재하고있다.
더구나 감사원 감사결과에서 나타나듯이 공무원들의 예산 탈법집행과 국고손실, 중복낭비투자 등 구조적 병폐는 해마다 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지방예산 편성에는 그 같은 병폐를 사전에 막는 안전장치를 어떤 형태든 마련해야 하고 원칙과 기준의 고수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지방예산은 지역주민들의 이해가 밀접히 연결되어있고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와 마을의 조성이라는 기본목표 외에도 저소득층에 보다 많은 복지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행정의 기본목표와 이 같은 요구들을 여하히 조화하고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느냐가 관건이다.
예산이 남아돈다면 별문제지만 지방 재정자립도가 형편없는 실정에서는 정책과 투자의 우선 순위를 보다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불요불급한 행정경비를 대폭 줄이고 낭비성 선심, 인기사업을 배제하는데 주력해야할 것이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그 동안 신규투자예산의 대부분을 올림픽을 대비한 도시정비와 환경사업에 투입하느라 도시의 뼈대를 바로잡는 기본골격 사업엔 손을 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서울의 교통사정만 예를 들어도 더 이상 어쩌지도 못할 만큼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런 점에서 예산의 효율성 극대화와 원칙의 고수, 예산낭비의 근절을 위한 제반 조치와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통제의 강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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