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의 첫째 요건은 무엇을 꼽아야 할까. 이 시대에 가장 요긴한 것은 정직이다. 그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가 겪어온 정치를 생각하면 실감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명분에 속아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그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목적을 내세워 독재와 부패를 일삼았다.
전두환 정권은 복지사회와 정의사회를 팔도강산에 구호로 써 붙이고 똑같은 일을 했다.
부패정권의 가장 큰 약점은 제아무리 독재를 해도 실상은 약체라는 데 있다. 영국의 정치인 「E·버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부패는…군으로부터 힘을, 우리의 의회로부터는 지혜를, 우리 헌법의 가장 존엄한 부분으로부터는 모든 권위와 신용을 빼앗아간다
2백년 전의 이 말은 바로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한 말 같다. 권력이 부를 탐하면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만다. 전두환씨가 권력 하나만으로 만족했다면 오늘 그와 같은 망신은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대통령은 정직 하나만으로는 모자란다. 그에겐 또 하나 절실한 것이 있다. 리더십이다. 그것을 시험하는 척도는 인재등용이다. 전 정권의 가장 큰 실패는 상식 밖의 인재등용이었다. 권력의 핵심을 장식했던 면면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요즘 국회특위의 청문회는 그것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금 지난 일들을 놓고 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국민은 언제 또 그보다 더한 시련을 반복할지 모른다.
문제는 독재다. 독재는 언제나 명분을 갖고 있다. 목적을 앞세워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단의 정당성 못지 않게 목적의 정당성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민주주의의 추구다. 우리는 그 동안 경제 개발이다, 복지다 하는 구호에 현혹되어 그보다 위에 있는 이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경제개발도 결국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위한 것이다.
국민의 요청을 외면하는 정치는 이제 5공화국의 시말과 함께 막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은 더도 말고 그 교훈 하나만 새겨도 중요한 요건의 하나는 갖춘 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