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 선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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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해봉 9단에게 신문기자가 물었다.
『만일 신하고 바둑을 두면 어떤 치수를 하겠습니까?』
임9단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두 점이면 내가 지고, 석 점을 놓는다면 한번 두어 볼만하네.』 바둑 9단이면 입신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 나라에 천하의 기사들이 모여 세계 프로바둑 선수권 대회(응창기배)를 열고 있다. 한국의 조훈현 9단, 중국의 섭위평 9단, 대만의 임해봉 9단, 그야말로 신들의 타이틀매치다.
이런 일화가 있다. 옛날 중국에서 바둑을 좋아하는 어느 왕이 이웃나라의 사신을 맞아 어전대국을 하게 했다. 왕이 내보낸 국수와 사신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러나 사신은 바둑의 바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그렇다고 왕 앞에서 바둑을 모른다고 할 수도 없었다.
흑을 잡은 국수는 중원인 천원에다 첫 수를 놓았다. 사신은 난처하기만 했다. 장고를 했지만 별수가 없었다. 그는 보기 좋게 그 흑돌 위에다 백 돌을 힘차게 포개놓았다. 순간 흑돌은 박살나고 말았다.
이 통쾌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왕은 무릎을 치며 백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지만 바둑세계의 절묘한 면모를 보여주는 얘기다.
바둑이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정설이 없 다. 그저 전설로 전해오기는 요임금이 반편 아들 단주를 가르치기 위해 궁리해 냈다고 한다. 혹은 순 임금이 그의 아들 상균의 바보스러움을 깨우쳐주기 위해 발명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위 이전의 반면은 l7도 2백89로였다. 당 시대(1200년 전)에 19도 3백61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구획은 다분히 역학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바둑알의 둥근 모양은 하늘을 가리키고, 반면은 주천의 일수와 같다. 4분한 90로는 4계, 외주의 72로는 월령, 중천의 별은 천원, 흑백은 음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기보는 육당(최남선)이 창립한 조선 광문 회가 1913년에 퍼낸 『기보』였다. 이를테면 묘수풀이 책으로 정석강의는 아니다. 육당도 바둑의 묘미를 진작 터득했던 것 같다.
국회청문회 와중에서도 독자들의 바둑 문의 전화가 빗발치듯하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 바둑 팬들의 열광도 보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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