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보호엔 국경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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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림픽대회 기간에 일어났던 몇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반미감정이 우리 사회에 확산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한미관계의 현재와 장래를 생각할 때 양국 정부와 국민이 다같이 치유해야할 비정상적 상태이지 그대로 방관해 버릴 일이 아니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는 최근 대학생으로 보이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한남동 외인주택단지를 공격하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5공화국 초기 미국정부가 독재정권의 등장 과정을 방조했고, 광주사태에 관련해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미국에 대한 반감의 뿌리가 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거기다가 지난 수 년 동안 숨돌릴 겨를 없이 가해져 온 시장개방 압력이 농민들을 비롯해 일부산업 종사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우리 국민의 주권의식에 분노를 일으키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마찰 요인에 대한 항의는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평화적 시위로 전달되어야지 폭력적 방법으로, 무방비 상태에 있는 그 나라 국민들에게 표출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그런 방법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은 국민여론에서 나오는 것인데 미국 정부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시정하도록 유도하는데는 미 국민의 여론을 설득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한국에 와 있는 미국 시민들이 화염병 공격을 받는 장면이 미국 국민들에게 전달 될 때 거기에 대한 반응은 반한 감정의 유발일 것이 불을 보듯 명백한 것이다. 한국인의 반미감정이 미국인의 반한 감정과 충돌할 때 한미관계는 정부간의 교섭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닫게될 것임을 알아야 된다.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나 반제국주의 운동이 선풍을 일으켰을 때도 중국인들은 반감의 대상이 미국 정부이지 국민은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던 사실의 뜻을 되새겨 봐야할 것이다. 또 미국 안에는 지금 재일 교포보다 많은 수의 우리 국민들이 영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지탄하는 보다 근원적 이유는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어떤 이유로든 공격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으로 공인된 도덕률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학생들이 시위를 통해 정치현실에 참여해온 오랜 전통이 독재로부터 민주화를 이끌어 내는데 참신한 활력소의 역할을 해온 사실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민주화의 골격이 잡혀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한남동사건과 같은 과격한 폭력시위는 그와 같은 소중한 전통을 욕되게 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외면케 하는 중대한 과오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불의에 항거한다는 명분에 도취되어 바로 자식들이 저주해온 폭력의 수단을 동의할 때 불의에 맞선다는 명분이 가질 수 있는 도덕적 우위성 자체가 허물어진다는 것을 한남동 공격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깊이 반성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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