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을 찾은 김경수(51) 경남지사는 법정에 들어서기에 앞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신을 둘러싼 취재진을 상대로 김 지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법정에서 변함없이 충실하게 설명하고 성실하게 소명하겠다”고 답한 뒤 재판정에 들어갔다.
법조계 안팎에선 김 지사의 영장 심사에 앞서 허익범 특검팀이 구속 필요성이 인정될 만큼 충분하게 '드루킹' 김동원(49ㆍ구속)씨 일당과 김 지사 간 공범 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 지사가 법정에서 피의자 소명을 하고 약 12시간 만인 다음날(18일) 오전 1시께 박범석(45ㆍ사법연수원 26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다. 드루킹 김씨에게 김 지사가 직접적인 댓글 조작을 지시했다는 텔레그램 메시지,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한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등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김 지사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해 다툼의 여지 있다" 적시
특히 박 부장판사는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적시했다. 판사 입장에서 볼 때 지난 두 달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집중했던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물이 다소 미진하다는 의미다.
특검팀은 지난 6월 말 출범한 이후 드루킹 일당과 김경수 지사 사이의 범행 공모 관계를 입증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지난 15일 김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허익범 특검팀은 "2016년 11월9일 김 지사가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일명 '산채')를 방문해 댓글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댓글 조작을 승인했다"고 적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만 말했다. 특검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김 지사의 혐의를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로 국한했다. 최근 특검 조사 과정에서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에 대해 김 지사 스스로 “제안은 아니지만 추천은 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지만, 특검팀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추가하지 않았다.
한 특검팀 파견 검사는 “가장 뚜렷한 혐의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에 적시해 발부 가능성을 높이자는 전략이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최근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된 드루킹의 최측근 도두형(61) 변호사의 케이스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한다. 김 지사에 대한 영장 심사에는 최득신 특검보가 직접 출석해 “김 지사가 드루킹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을 바꾸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충분하다”며 영장 발부의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특검팀의 예상과는 달랐다.
법조계 안팎에선 특검이 보강 수사를 통해 김 지사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하는 대신 김 지사를 댓글조작 공범 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수사 종료일(25일)이 채 열흘도 남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송인배(50)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특검 수사 과정에서 실정법 위반 혐의가 나타난 경우에 대해선 검찰에 사건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