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마무리 연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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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준비학교'에 등록한 노인들이 10일 유언장 작성 방법을 배우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어르신들, 월요일에 보신 영화 어떠셨어요?"

"옛날 생각나더라고. 우리 어렸을 땐 호상이면 정말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 보기 어렵잖아."

"역시 처신을 잘하다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죽고 나면 그렇게 다 드러날 거 아냐."

10일 오전 11시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하름교회 청년회의실.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시니어 죽음준비학교' 참가자 20명은 이틀 전에 함께 본 영화(학생부군신위)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고 있었다. 평균 연령 70세인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생생한 영화평을 쏟아냈다. 강사 유경(46.사회복지사)씨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영화 제목의 정확한 뜻을 묻는 질문에는 이 학교 '최고령 학생'인 노영옥(80.노원구 상계동)할아버지가 유씨 대신 나서서 칠판에 한자까지 써가며 설명했다.

"제가 가르쳐드리는 것보다 배우는 게 더 많아요. 어쨌든 제 강의를 통해 어르신들이 죽음에 대해 마음을 열고 즐겁게 받아들이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쁘죠."(유 복지사)

참가자들도 만족스러워했다. "강의가 모두 즐겁고 재미있어. 전엔 죽는다는 게 두려웠는데 이렇게 같이 얘기하고 배워보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겠더라고."(최상희 할머니.70.서울 중계동)

김명순(69.서울 노원구 상계동) 할머니는 "오늘 강의에는 변호사 선생님이 와서 유언이나 상속에 관한 설명도 해주셨다"며 "남겨줄 재산은 없지만 자식들이 우애 있고 건강하게 살라고 유언을 써봐야겠다"고 말했다.

5주 단위로 16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인 이 학교의 키워드는 '해피엔딩'이다. 남성 4명, 여성 16명으로 이뤄진 참가자들은 지난달 28일 2박3일간 경기도 가평으로 '한마음 캠프'도 다녀왔다. 캠프에서 참가자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프로그램은 역할극. 노인들은 옛날에 이루지 못한 짝사랑이나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연기에 몰두했다. 자녀들에게 보낼 '영상 편지'를 만들고, 주먹 등 자신의 신체 일부를 석고로 떠보기도 했다.

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공동원 관장은 "어르신들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 지난달 17일 죽음준비학교를 개설했다"며 "서울시공동모금회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서울시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어르신은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기 과정 수료식은 22일 열린다. 참가자들은 수료식에서 가족들에게 자신이 만든 자서전과 유언장.영상편지 등을 전달할 계획이다. 연말까지 총 4기 교육(20명씩)이 진행되며, 2기 과정(총 20명)은 6월 초 시작될 예정이다. 02-948-2745.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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