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취학」결정은 부모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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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 큰애들이 집안에서 놀기만 해요』라는 젊은 부부들의 불평에서부터 조기교육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만 6세가 가까우면 요즘 어린이는 다 컸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자라 있다. 80년과 비교한 소아신체발육 표준 치에 따르면 키 2cm, 몸무게 2㎏의 발육성장 치를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국교 샘플 조사에서도 우리 어린이가 2cm, 2㎏씩 일본어린이 보다 높다. 우선 신체적으로도 10년 전 어린이 보다 조기발육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잘 노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부모 눈에는 노는 아이가 도리어 걱정거리로 비친다. 앞으로 닥칠 입학의 고비가 얼마나 험준한데 저렇게 놀기만 할까. 무언가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취학 전 어린이는 영어학원, 주산학원, 피아노교실 등을 거쳐 유치원을 다니게 된다. 읽고 쓰고 셈하기는 이미 다 끝을 냈다.
취학 년도가 되어도 생일이 3월1일이 넘으면 또 유치원을 다녀야 하니 유치원 재수생이 늘어나고 2월28일생이 갑자기 늘어난다. 취학 전 교육비가 대학생의 학비와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경제적 부담도 늘어난다. 그래서 돈 없는 집 어린이는 마냥 놀고, 돈 있는 집 어린이는 유치원 재수생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만6세(3월1일 기준) 입학 허용이라는 획일적 규정에서 『개인차를 고려하여 융통성을 부여하고 5세가 넘으면 학교장의 재량으로 입학을 허가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런 형편에 『이 땅의 5세 유아를 불행에 빠뜨려야겠는가』라는 엄청난 제하의 9개 유아교육단체의 성명서가 느닷없이 도하 신문에 실렸다. 수용능력 없는 국교가 어떻게 5세 아이들 교육까지 책임질 것이며 5세 취학을 선별적으로 할 경우 학부모의 교육열이 『5세 입시과외』라는 기현상을 불러일으킬 터이므로 종전 6세 취학을 그대로시행하자는 것이다.
조기교육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외면한 채 유치원생 수급부족 현상을 우려한 속셈을 노출시킨 일면도 없지는 않지만, 5세 입시과외 열풍이라는 지적은 매우 현실감 있게 우리 귀를 파고든다.
중앙교육심의회의 건의안에 따르면 『5세가 넘으면 학교장의 재량으로 입학을 허가하되 검사를 실시하여 아동의 취학가능성 여부를 판별한다』고 되어있다. 5세 취학의 선별 권이「학교장의 재량」과 「검사」에 있다면 분명 5세 취학을 위한 치맛바람과 입시열풍은 불을 보듯 훤해진다.
이미 영국과 뉴질랜드는 아무런 불편 없이 5세 취학을 의무화하고 있고 구미의 대부분 나라가 교장의 재량으로 5세 취학을 허용하고 있다. 조기교육은 세계적 추세이나 운영방법에 있어 우리의 특수한 교육풍토가 문제될 뿐이다.
우선 5세 취학의 허용이라는 원칙적 방향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운영방법과 시기는 단계적이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그 다음, 교장의 재량권과 검사도 운영방법으로는 부적당하다. 그 결정권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맡겨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전제라면 5·8세가 된 어린이는 자동적으로 입학이 허용되어야 하고 부모의 의사에 따라 입학을 결정한다.
그래서 5·6세 5·4세…5·0세로 이어진다면 별다른 마찰 없이 조기교육의 목적은 달성될 수가 있을 것이다. 조기교육을 선별적 방식이 아닌 일률적 방식으로 하되, 입학의 결정권은 교장이 아닌 부모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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