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책임 회피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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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처럼 도입된 국회 청문회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원 못지 않게 증인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증인들이 오로지 진실의 은폐나 문제의 축소에만 급급한다면 아무리 의원들이 따져도 진실이 규명되기는 어렵다. 위증이나 증언거부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증인들이 발뺌하고 둘러대기로 든다면 처벌의 법조문만 갖고는 진실증언을 강요하는데 한계가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증인들의 자세와 인격이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 나온 5공 핵심인물들의 증언자세는 실망감을 넘어 과연 이런 방식으로 5공 청산작업이 제대로 될까 하는 의아심까지 들 정도였다.
증인들은 대부분 핵심질문에 대해서는 『모른다』 『나와는 관련 없는 사항』이라는 말로 회피하고 당시 자기들의 행위를 궁색하게 정당화하는데 급급했다.
5공 핵심인물이라면 일단 과거에 대한 반성의 기조에서 증언하는 자세가 있었어야 했는데도 전혀 그런 기색을 볼 수 없었다. 왜 당시 전국을 휩쓴 국민적 항쟁이 있었고 왜 여야는 만장일치로 국회에 특위를 설치했으며 5공 청산에 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는가.
이를 안다면 그런 증언이나 그런 자세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덜고 우리 사회를 앞으로 향하게 하는데 그나마의 기여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자기와 관련된 문제의 진실을 밝히는데 오히려 적극 나섰어야 당연하다.
무엇보다 5공의 중요인물들은 모든 의혹의 대상에 대해 국민과 역사에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다. 당시 자기들이 한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 자리를 물러났다고 해서 다 면제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책임은 개인간의 신의보다 앞서고 무거운, 국민과 역사에 대한 책임이다. 또 자기들과 관련해 오늘날 나라 전체가 이토록 고통받고 있음을 보더라도 밝힐 것을 시원하게 밝히는 것이 떳떳하고 인격을 보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다시 구차하게 할 필요가 없도록 앞으로 국회 증언에 나서는 5공 인물들은 책임 있고 성실한 자세로 증언하기를 거듭 당부한다. 자기가 관여한 일의 책임에서 도망가지 말고 그리하여 5공의 족쇄에서 우리 모두가 빨리 풀려날 수 있도록 하는데 응분의 역할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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