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 400야드 … 스무 살 장타왕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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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열다섯 살짜리 아들의 키는 1m82㎝를 넘었다. 축구 매니어였던 아버지 이찬선(50)씨는 체구가 큰 외동아들에게 축구를 시켰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은 "재미 없다"며 유니폼을 벗어버렸다. 2000년이었다. 이번엔 아들의 손에 골프클럽을 쥐어줬다. 대답은 똑같았다. "골프가 무슨 운동이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6개월 만에 아들은 다시 클럽을 잡았다.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서였다. 처음과는 달리 공을 맞히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멀리 때리기만큼은 자신있었다. 호주 국가대표 선수 이원준(20.사진)이 주인공이다.

7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끝난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 아마추어 초청선수로 출전한 이원준은 합계 7언더파로 공동 9위에 올랐다. 모든 관심이 미셸 위에 쏠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의 장타력은 돋보였다. 특히 최종 3라운드 18번 홀(파5)에선 뒷바람 속에서 드라이브샷을 400야드 이상 날려 보냈다. 드라이브샷 거리를 공식적으로 집계한 10번 홀에서도 357야드로 1위를 차지했다.

7번 아이언으로 190야드, 9번 아이언으로도 160야드 이상을 날려 보낸다. 부드러운 스윙에 장타력까지 겸비해 '호주의 어니 엘스'로 불리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난해 미국 전지훈련 때 476야드를 기록한 적도 있어요. 공을 찾지 못해 OB가 난 줄 알았는데 그린 근처까지 공이 굴러가 있었어요."

1m91㎝, 93㎏에 발크기가 305㎜인 이원준은 영국왕실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공동으로 선정하는 아마추어골프 세계랭킹 1위다. 이원준은 11월에 프로 전향을 선언한 뒤 일본 투어를 거쳐 미국 무대에 진출할 계획이다.

이원준은 중학교 시절까지 '다니엘 리'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어느 날 '이원준'으로 이름을 바꿨다.

"다니엘이라고 하면 내가 한국 사람이란 걸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래서 한국 이름으로 다시 바꾸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지요. 가운데 글자인 '원(won)'은 영어로도 '이겼다'는 뜻이 있잖아요."

스카이72 골프장 주변에 공항이 있어 시끄럽지 않았느냐고 묻자 뜻밖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저는 원래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든,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든 상관하지 않거든요." 체구는 어니 엘스인데 성격은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이었다.

영종도=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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