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검사도 선배 지휘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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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부장급 고참검사를 일선 검찰청의 평검사로 발령내 후배 검사의 지휘를 받게 하는 서열파괴형 인사제도의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법무부는 내년 2월 정기인사 때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방침이다. 문성우 법무부 검찰국장은 지난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검찰 인사제도 개혁 방안을 설명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따르면 고검에 배치된 검사나 각 지검.지청의 부장검사급 300여 명 중 근무 평점에 따라 일부를 일선 검찰청의 평검사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선배 검사가 후배 검사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현행 검찰청법은 검사의 직급을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통상 직위 개념으로 평검사-부부장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 등으로 나눠진다. 부장검사급은 임관 후 14년차 이상이다. 법무부는 또 현재 일부 지검 등에서 운용 중인 전문부장 자리에는 추가 발령을 내지 않기로 했다. 2003년 도입된 전문부장 제도는 부장급 검사가 독자적으로 수사업무를 담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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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기업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기수.서열 파괴형 인사제도가 검찰에 도입되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상명하복과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 조직에서 선배가 후배 밑에서 지휘.감독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사적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검찰 내부 반응이다. 올 2월 정기인사에서 사법시험 23회(1981년 합격) 동기생 40여 명 중 6명만이 검사장에 승진했다. 이 중 일부만 변호사로 개업했을 뿐 상당수가 고검이나 대규모 지청의 지청장에 배치됐다. 보직 발령에 밀린 후배 기수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이에 법무부와 검찰은 서열파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법무부의 인사 관련 관계자는 "선배들의 인사적체가 심화되면 신규 검사를 임용하는 것도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단순히 자리만 보전하려는 고참 검사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경쟁을 통한 검찰 내부의 긴장감을 높일 수 있고, 침체된 분위기의 쇄신 등 순기능이 많다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승진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시 평검사로 되돌리겠다는 방식의 파격은 장기적으로 검찰 조직의 결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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