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논술의 중요성 왜 모르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24개 대학이 2008학년도 대입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50% 이상 반영키로 했다. 언론은 그런 결정이 내려진 배경으로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대학들에 '사실상의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현직 교사인 나로서는 그런 정치적인 배경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부든 대학이든 진짜로 '교육다운 교육'을 하겠다는 진지한 고민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내신을 강화하면 사교육비가 절감되고, 공교육을 통해 주체적이며 '온전한 인간'을 키울 수 있을까.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보면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 논술 전형이 확대되면 참된 교육은 불가능할까. 그 역시 찬성하기 힘든 논리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논술 교육은 기피돼 온 것이 사실이다. 논술은 정식 교과목이 아니고 교사가 지도하기에는 어려운 분야다. 논술 지도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르쇠'로 지내자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입시에서 논술 비중을 줄이고 내신을 높인다는 배경에 "논술이 싫다"는 일부 교사의 정서가 반영된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신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가경쟁력 향상과 교육의 장기적 측면을 따져보면 학교의 논술 교육은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 대입 전형에 있어서도 논술 비중이 점차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학생들이 논술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논술 교육은 단순 기능적.기술적 인간이 아닌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인간을 함양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선 논술 교육을 하면 당연히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속해 있는 전교조의 동료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논술 교육을 하면 교육에서의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는 논술 문제마저 일부 족집게 강사들에 의해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입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논술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엔 동의하기 어렵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격이다.

그보다는 학원 교사가 아니라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논리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이성적으로 토론하고, 체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교사들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지금의 30대 이상 교사들은 학교에 다닐 때 그런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다. 배우지 못했으니 가르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 논술이 아니라 그 어떤 과목에서도 교육 주체인 교사들이 스스로 지식의 울타리를 확장하려 애쓰지 않는 한 성공적인 교육은 이뤄질 수 없다.

지적 소양을 갖춘 교사들이 학교에 널려 있는데도 사교육비의 주범이라 불리는 학원.과외가 성행할 수 있을까.

최근 교직 선호도는 그 어떤 직업군보다 높다. 교사만큼 안정적인 직장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승진 수단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지적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심화연구는 모든 교사의 사회적 책임이라 해도 당연하지 않을까.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