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바래지 않은 환상의 선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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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련으로부터 받은 문화적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체코로부터 또 귀한 음악의 선물을 전해 들었다. 수많은 레코드를 통해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고 말 그대로 금세기 최고의 앙상블인 스메타나 현악 4중주단이 3일 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역사적 공연을 가졌다.
연륜을 증명이나 해주듯 4명의 주자들은 하나같이 흰머리를 이고 있었다.
은퇴를 했어도 벌써 했을 것 같은 저들이 과연 이빨빠진 호랑이 격이 되지나 않을까 싶었으나 놀랍게도 예상을 뒤엎었다. 젊은이들이 무색할 정도의 싱싱하고 탄력성있는 음악적 피부를 드러내 보였다.
4명이 모두 악보없이 음악을 송두리째 외고 있는 것도 놀라왔다. 수없이 연주돼온 악곡들이기는 하나 고령이면 기억이 쇠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초롱초롱한 음악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 자기네 나라의 작품만으로 꾸민 이번 연주회는 정말 많은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처음 연주된 스메타나『현악4중주 2번』에서는 곡이 시작되자마자 그들이 세계정상이라는 것이 시사된다. 기막히게 알맞은 음량의 조절이라든가 4명 모두가 독립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면서도 음악이 원하는 지점을 향하고 있는 일체감의 절묘성은 정말 놀라왔다. 실같은 현의 소리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강인하며, 또 부드럽기는 왜 그렇게 부드러운가 싶기도 했다.
4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확실한 자기의 음악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드러낼 때와 숨길 때를 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적 조화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곡 제2번』에서나「드보르작」의 『현악4중주곡 제12번』에서나 간에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울렸다 웃겼다 정말 자유자재였다. <이강숙 (서울대 음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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