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원장·고령의사 다 구해줍니다” 불법 병원 만들어 주는 컨설팅업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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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 요양병원 판친다 <상> 

“요양병원 경험이 전혀 없다면서 무턱대고 차리면 ‘리스크(손해)’가 너무 커요. 커피전문점과 마찬가지예요. 작은 것부터 하세요. 9병상짜리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을 6개월 정도 운영해 보면 (정부의) 장기요양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일 거예요.”

“의사 면허 없는데…” 묻자 #“개원할 수 있는 방법 있다”

지난달 초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 개원 전문 컨설턴트로부터 기자가 들은 내용이다. 상담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사무장 병원’이라는 말은 안 했지만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도 요양병원을 차릴 수 있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의사 면허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다 차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장담했다.

기자가 사이트에 올라온 ‘경기도 소재 200병상 규모. 권리금 8억원’ 물건에 관심을 보이며 “요양병원이 돈이 된다고 들었다”며 넌지시 물었다. 자신을 요양(병)원 담당 A실장이라고 소개한 50대 여성 컨설턴트는 “요양병원을 운영해 본 경험이 얼마나 되냐”고 되물었다. A실장은 자신들의 업체는 병원 매물을 의뢰인에게 소개만 해주는 일반적인 부동산 회사와 달리 실제 개원, 명의이전까지 완벽하게 해주는 요양병원 전문 컨설팅 업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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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사업이 처음이고, 의료인이 아니라고 말하자 A실장은 ‘9인 공생’을 먼저 추천했다. 공생은 10명 미만의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으로 의료법 적용을 받는 요양병원이 아니라 노인복지법 적용을 받는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입소자 10명 이상부터 노인요양시설로 분류하는데, 9인 공생은 반드시 갖춰야 할 시설기준, 직원 배치기준이 덜 엄격해 그만큼 개원이 상대적으로 쉽다.

A실장은 “9인 공생을 실제 6개월 정도 해 보면 정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체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흐름을 알게 될 것”이라며 “그때 또 다른 9인 공생을 하나 더 하든지 아니면 입소자가 10명 이상인 노인요양시설로 바꾸는 게 위험 부담을 줄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게 좋다고 했다. 현행법상 노인요양시설(공생 포함)은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 또는 의료법상 의료인만 차릴 수 있도록 제한을 뒀는데, 사회복지사 한 명을 반드시 써야 해 ‘돈’이 나간다는 것이다. A실장은 “9인 공생은 월 400만~500만원 남는다”고 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으면 요양병원도 차릴 수 있다고 했다. 현행 의료법상 광역 지자체의 장에게 요양병원 허가를 받으려면 반드시 의료인 자격을 갖춰야 한다. 비영리 의료법인이나 소비자의료협동조합 형태로 허가서를 낼 수 있지만 일부 사무장 병원으로 악용된 사례가 적발돼 조건이 까다롭다고 했다.

“의사 면허가 없는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으니 A실장은 “다 개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귀띔했다. “개원에 필요한 의사를 구해준다”는 것이다. 의사는 매년 8시간의 보수교육을 받으면 평생 면허 유지가 가능하다. 고령의 의사와 ‘바지 원장’이 필요한 요양병원의 실소유주인 비의료인(사무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개원에 필요한 의사를 구할 수 있는 현실이 A실장의 설명에서 읽혔다.

해당 요양(병)원 컨설턴트 업체에서는 환자 유치는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은 병상 수 규모에 따라 시설기준 규격이 복잡하다. 컨설턴트는 개원에 필요한 것만 해준다고 했다. 환자 유치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대신 ‘권리금’을 설명했다. A실장은 “병원 매매를 할 때 권리금이 있다”며 “요양환자가 몇 명이냐에 따라 경영 상태를 알 수 있어서다. 통상 1인당 1000만원”이라고 했다. 각종 요양병원 매매 사이트에 올라온 요양병원 매물을 보면 수억~수십억원의 권리금이 붙어 있는 물건을 볼 수 있다. A실장은 수도권에 9인 공생 물건이 하나 나와 있으니 언제든지 보러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여기 사장님은 ‘공생’으로 돈을 벌어 공생을 하나 더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위성욱·김민욱·김호·김정석 기자 we.su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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