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상품값 얼마나 싸지나|흑자시대 수입확대·세 인하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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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소비자들이 흑자시대를 실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변화중의 하나가 바로 수입개방과 수입상품의 가격 하락이이다.
국제수지 흑자로 생긴 여력을 활용 국민들의 실생활에 무언가 눈에 띄는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길은 크게 보아 ▲정부가 흑자분을 재정으로 흡수, 길을 닦는다든가 하는 공공투자를 늘리는 것 ▲기업이 수출에서 생긴 여력을 임금인상 등에 활용, 실질소득을 높여주는 것 ▲그리고 외국상품의 수입을 확대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 외국상품의 수입확대는 필연적으로 그간 적자시대의 관세·비관세 수입규제에 의해 보호되어오던 국내산업과의 마찰을 불러오게 되어있다 그러나 「마찰」이라는 용어자체가 따지고 보면 산업보호적인 입장에 서있는 것이고 흑자시대의 국민복지·소비자이익·산업경쟁력강화 등을 생각하면 국·내외 산업과의 「마찰」이 아닌 「경쟁」을 통해 질 좋고 값싼 상품을 소비자들이 마음대로 골라 쓸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한마디로 「생산자보호」에서 「소비자보호」로 정책의 기본줄기를 바꿔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세계개편안을 통해 내년부터 관세와 특소세를 많이 손질해 시행키로 한 것도 다 그 같은 정책전환의 하나다.
물론 교역상대국과의 통상마찰 등도 염두에 둔 세율체제 조정이지만 이제 우리 스스로가 흑자의 여력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주도권을 잡고 수입장벽을 실질적으로 낮춰가기 시작 할 수 있다는데 큰 뜻이 있다.
별표와 같이 내년부터 조정키로 된 관세와 특소세를 현행 수입가격과 환율수준에 그대로 적용, 주요 상품별 세후판매원가(수입상과 유통상의 마진이 붙기 전 가격)를 계산해보면 실제로 많은 상품의 가격이 내년부터 크게 떨어짐을 알 수 있다.
냉장고는 미 제너럴 일렉트릭사 제품인 가정용 대형의 판매원가가 1백13만6천 원 정도로 되며 컬러TV는, 일제 소니 27인치짜리의 판매원가가 1백2만1천 원쯤까지 떨어진다.
특히 위스키나 보석·모피의류·골프채·고급시계 등 그간 사치성 물품이라 하여 고율의 세금이 붙던 물품들은 세율의 조정폭이 다른 물품에 비해 크기 때문에 내년부터 떨어지는 가격폭도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
이 같은 물건들은 그동안 사실상 밀수를 조장하는 부작용이 더 컸고 고율 관세부과의 효과가 적었다.
예컨대 벨기에 산 다이아몬드 3푼은 개당 59만6천 원정도가, 스웨덴제 중급 모피코트는 벌당 1백91만4천원이, 시버스리걸 7백50㎖짜리는 병당 2만5백원이 각각 싸지게 된다.
더우기 앞으로도 계속될 원화의 절상추세를 감안하면 수입상품의 가격은 더 떨어질 소지가 있다.
반면 내년부터 특소세가 신설되는 전자오르간(신디사이저)은 현재보다 5%가량 판매원가가 오르게 된다.
정부는 국민경제의 흑자전환에 맞추어 일단 내년부터 이 같은 수입가격의 인하를 염두에 둔 세율조정을 단행할 예정이지만 만의 하나 어떤 물품의 수입이 국내산업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늘 때는 탄력관세제도를 활용, 수입급증을 막을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세율조정의 목적을 잘 이해한다면 그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소비자나 기업의 평소 합리적 습관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전기세탁기의 경우 내년부터 수입품의 대당 판매원가가 35만5천 원 수준으로 떨어지는데(별표참조)여기에 수입상과 유통상의 마진이 붙는다면 소매가가 40만원이 약간 넘을 것이고 이 경우 소비자들은 앞으로 대당 40만원에 조금 못 미칠 국산세탁기(5㎏·전자동) 와 가격뿐 아니라 품질·아프터서비스 등을 다 감안해 어떤 것을 살 것인가 신중히 판단해야 하며 기업은 기업대로 근소한 가격차로도 충분히 소비자들을 끌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내년부터 소비자들로서는 수입상품의 소매가격에 실제로 세율 조정폭이 반영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세율조정이 소비자의이익이나 산업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유통상의 마진폭만 불려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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