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 달라진 30년… "자장면이면 행복" → "게임기 사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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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어린이날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휴대전화 매장에서 한 어린이가 선물을 고르고 있다. [중앙포토]

회사원 김성연(40.여)씨는 1970년대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날'이 되면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거나 소풍을 갔다. 김씨가 가장 받고 싶었던 어린이날 선물은 당시 2000원짜리 과자종합선물세트였다. 김씨는 "집에 가면 아버지가 퇴근하기를 기다려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러 나가곤 했다"고 말했다.

올해 김씨는 외아들 형욱이(6)를 위해 특별한 어린이날을 준비했다. 아들의 지능을 계발하기 위해 조립 방법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장난감을 사놨고 '페이스 페인팅'재료도 구입했다. 5일 당일은 붐빌 것이라고 생각해 2주 전 미리 교외 놀이공원에도 다녀왔다. 김씨는 "주변에서도 주 5일제를 이용해 나들이를 미리 다녀오는 사람이 많더라"고 전했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23년 첫 행사를 시작한 이래 올해로 84회를 맞는다. 시대에 따라 행사.선물의 풍속도도 크게 달라졌다.

◆ 선물은 먹거리에서 휴대전화로=60, 70년대에는 빵.과자 등 군것질거리가 인기 선물이었다. 70, 80년대에는 5000~1만원 정도의 완구류.학용품 등이 많이 팔렸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81년 자료를 찾아보면 미니하모니카.바늘쌈지 등의 선물이 많이 팔렸다고 돼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게임기.휴대전화 등이 선물 1순위다. 어린이 전용 포털사이트 주니어네이버가 3877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50%의 아이가 게임기.휴대전화를 최고의 선물로 꼽았다. 청와대 어린이 홈페이지가 2일부터 한 설문조사에서도 최신 휴대전화나 MP3 플레이어 등이 1순위를 기록했다. 말을 알아듣는 강아지로봇 등 첨단 장난감도 인기다. 현대백화점 측은 "웰빙 바람이 불면서는 항균 처리된 인형과 비만 어린이를 위한 헬스기구가 옷이나 장난감 등 전통적인 선물을 앞질렀다"고 설명했다.

재테크 선물도 등장했다. KB자산운용은 오랜 기간 조금씩 투자할 수 있는 어린이들을 겨냥해 장기적으로 고수익이 가능한 종목을 선별해주는 주식형 펀드를 최근 내놨다. 어린이날을 앞둔 3, 4일 이틀 동안 이 펀드를 계약한 부모는 1500여 명. 국민은행 관계자는 "어린이날 선물로 펀드를 선물하려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고 설명했다.

◆ 경기 타는 어린이날=경제 동향도 어린이날 풍속도에 영향을 줬다. 호황이던 90년에는 1인당 3만원을 받는 호텔의 어린이날 상품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의 권고로 12개 호텔이 호화행사를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외환위기가 닥친 98년에는 백화점마다 장난감 교환 벼룩시장, 수동으로 조립하는 1만원대 장난감 등이 인기였다. 올해는 선물도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어린이 명품 코너와 특가 선물매장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뒤져 '알뜰 선물'을 마련하는 실속파도 늘어났다고 한다.

◆ 기념일보다는 휴일로=어린이날이 법정공휴일이 된 것은 75년이다. '색동회'의 배동익(70) 대표는 "어린이날이 공휴일로 바뀌면서 아버지가 참여할 수 있게 돼 어린이날이 진정한 가족 기념일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최근 주5일제와 맞물리면서 어린이날이 가족의 중요한 휴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쉬는 날 갈 곳이 다양해지면서 과거 어린이날의 전통적인 코스로 여겨졌던 놀이공원 등에는 상대적으로 사람이 덜 몰리고 있다. 서울대공원의 경우 88년 5월 5일에는 하루 입장객이 33만 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0만여 명만 찾았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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