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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맹형규와 이계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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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006년 서울시장 선거는 변호사들의 대결로 결론났다. 민노당 김종철 후보를 제외한 강금실(열린우리당).오세훈(한나라당).박주선(민주당) 후보는 판사.검사 출신이다. 강 후보는 2일, 오 후보는 지난달 25일 당내 경선에서 공천이 확정됐다.

공천을 따낸 후보들은 본선이 남아 있긴 하지만 1차적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탈락한 후보들이 아깝다. 빠른 변화와 물갈이에 익숙한 현재 한국 사회의 특성상 이들은 금방 잊힐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열린우리당 경선 패배자인 이계안씨나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한 맹형규.홍준표씨가 소속당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선대본부장을 맡는다 해도 그들의 역할은 조연에 불과하다.

유난히 이들에게 눈길이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준비된 후보'였기 때문이다. 1년 이상 서울 시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관계 공무원과 교수들을 만났다. 정책개발에도 열을 올렸다. 이렇게 애써 마련한 각종 정책을 서울시민에게 제대로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그것을 펴볼 수는 더더욱 없게 됐으니 안타깝다는 얘기다.

만약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후보자들의 언약처럼 정책선거로 치러진다면 그 공의 상당한 몫은 이들 패배자의 것이다. 각 당 서울시장 후보의 TV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이 "수준 높은 토론이었다" "어느 누구를 서울시장으로 뽑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토론의 질을 높이고 정치의 품격을 업그레이드한 이들의 기여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상대 당 후보들도 경선 패배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맹 후보는 점잖고 식견이 있더라"(강금실), "맹 후보가 준비를 많이 했다는 인상을 받았고 국제적 감각도 있더라"(이계안)고 했다. 본선에서 까다로운 상대를 피하려는 전략적 고려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맹 후보의 풍성한 정책 제시는 돋보였다. 이계안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들에 의해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정책 제시 등이 눈에 띄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강금실.오세훈 후보의 취약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적전(敵前) 분열을 보일 셈이냐"는 당 내부와 지지층의 비판에 위축돼 있었다. 단적인 사례가 강 후보의 '용산공원 내 아파트 16만 호 건설'문제였다. 이 후보가 "분당에 10만 호를 짓는데 용적률 184%로 했을 때 600만 평이 필요했다"면서 "16만 가구를 지으려면 1000만 평의 땅이 필요한데 용산에 그런 부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강 후보는 "타워형으로 지으면 가능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용적률이란 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의 연면적 비율이다. 100평의 땅에 건평 30평짜리 6층 건물을 지으면 용적률은 180%가 된다. 아마도 강 후보가 용적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당에서 만들어 준 정책을 검증하지 않고 발표했기에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이 후보는 집요한 공격으로 강 후보의 준비성 부족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당 후보와의 토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완하라"고 충고하고 넘어갔다.

성실성과 준비성이 감성과 이미지를 극복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상품은 포장보다는 실질가치가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포장을 보고 구매충동을 느낀다. 서울시장을 뽑으면서도 상품 구매와 똑같이 해서는 곤란하다. 그래 놓고 정책 대결을 하지 않는다고 정치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승자들이 패자들의 좋은 정책을 벤치마킹이라도 해 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