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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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림픽에 이은 국정감사와 탈주범 사건 등을 겪으면서 과연 우리사회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우리의 정말 모습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우리 사회의 양면성을 보게 된다. 어느 한 쪽을 보면 선진국문턱에 선 믿음직한 모습이지만 다른 한쪽을 보면 창피스런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아직도 생생한 올림픽의 그 화려한 기억과 유전무죄라는 탈주범의 절규는 둘 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지만 어느 쪽이 우리의 참모습과 가까운 것인가.
어느 나라 건 내부에 불균형은 있기 마련이지만 이토록 극단적인 양면성의 혼재 현상은 그 사회의 불안정성과 미숙성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 단계 성숙도, 민주화도 기약하기 어렵다.
불과 2주일 전에 우리는 성공적인 올림픽을 폐막하면서 우리 수준과 능력을 자신하고 당당한 세계의 한 주역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실제 소련과 중국이 우리에게 문을 열고 동구권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를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제3세계 나라도 많다. 전 같으면 생각도 못해 본 대통령의 유엔 총회연설을 보게 되고 남북한간에도 뭔가 숨통이 트일 것 같은 기대가 높아가고 있다.
걱정되던 올림픽후의 경제상황도 잘만 돌아가고 있어 주가는 기세 좋게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나고 가슴 뿌듯한 자부감과는 정반대의 현상들이 국정감사와 탈주범 사건에서 다량으로 쏟아져 우리에게 좌절감과 수치심을 강요하고 있는 것도 또한 현실이다.
가령 명색이 「교육」을 시킨다고 하면서 50명이나 죽게 한 삼청사건, 8순 노인까지 가둬놓고 인권이 있는지 없는지도 까마득한 청송감호소의 실태, 신체장애자까지 끌어간 소위 「문제학생」의 징집·변사…. 이런 일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올림픽을 잘 치른 문명국에서 사는지 야만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모든 판·검사를 죽이고 싶다』,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라고 외친 탈주범 사건도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하는 자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이 말은 마치 불멸의 진리처럼 1인당 1백 달러 시대나 3천달러시대나 변함 없이 나오고 있다.「비녀 꽂기」라고 표현된 교도소의 잔혹 행위도 일제나 독재나 민주화거나 상관없이 내려오고 있다.
우리 수준을 의심케 하는 일은 이뿐이 아니다.
우리에겐 세계1위를 자랑하는 기록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1위는 교통사고라는 사실이 국감자료에서 또 한번 확인되었다. 금년 들어 하루 27명이 교통사고로 죽어나가고 그 성장률(?)은 놀랍게도 47%에 이른다. 올림픽의 그 수준 높은 질서의식이 우리 수준인가, 세계1위의 교통사고가 우리 수준인가.
먹고 살만하게 됐다고 그토록 자랑하던 80년대의 지난 7년 간 해외입양으로 내보낸 우리 어린이가 무려 5만 5천명이라는 사실도 국감자료는 알려주었다. 헐벗고 굶주리던 6·25직후 50년대와 산업화 이전의 60년대까지 20년 간 내보낸 아이가 8천 2백명 이었다니 실로 어마어마한 고도성장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우리의 진면목은 어느 쪽인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그 수준, 그 능력이 진짜 우리인가, 사람을 사람대접하지 않고 교통사고 1위, 유전무죄·비녀 꽂기가 우리 모습인가.
국정감사로 드러난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탈주범 사건은 한마디로 말해 우리 사회 내부에 야만적·반문명적·비인간적 요소가 다분히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그런데도 이런 요소들은 있어도 없는 체,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면서 올림픽과 북방외교와 흑자무역이 우리의 모습인 것처럼 애써 믿으려 하고, 믿게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닌가.
그러나 이제 이런 문제들의 대량 표출은 우리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우리내부의 모든 야만적인 요소를 몰아내는 노력을 더 이상 늦출 수 없게 하고 있다. 유전무죄를 그냥 두고 민주화가 어디 있으며, 교통사고 세계1위를 자랑하면서 올림픽 질서의식을 고평 해봐야 헛수고다. 잘 살게 됐다고 그렇게 외치지만 그토록 많은 우리 애들을 남의 땅에 보내는 것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겉모양은 번드레하면서 속내용은 추악한 모습을 언제까지고 계속 할 수는 없다. 강조기간에만 수준 높고 평소수준이 낮다면 우리 수준은 낮다고 인정해야 한다.
외국사람의 칭찬을 좀 덜 들으면 어떤가. 안과 밖이 같아야 칭찬을 받아도 낯이 뜨겁지 않다. 요컨대 자가용을 사기전에 집안의 냄새나는 하수도부터 고치자는 것이다. 3천 달러라면 교도소도 청송감호소도 교통질서도 다같이 3천 달러 수준이 되게 해야한다.
올림픽·북방외교·흑자무역·여행자유화만이 우리 모습이 아니며 우리 내부의 온갖 야만적·반문명적·전 근대적·비인간적 요소들도 엄연한 우리의 한 모습임을 인정하면서 그 청산에 시급히 착수해야 할 때가 됐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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