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보며 음악듣는 '멀티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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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재즈 싱어'(1927년)가 최초의 유성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도 영화를 상영할 때는 피아노나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뒤따랐다. 영사기 소음과 관객이 떠뜨는 소리를 가리면서 영화의 분위기와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오는 10월 14~15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공연을 하는 '필립 글래스 앙상블'공연에서도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14인조 앙상블이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무성영화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한 화성과 선율을 집요하게 반복하는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66). 그가 리더 겸 건반악기 주자로 활동 중인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코야니스카씨''포와카씨'에 등장했던 영화음악을 들려준다.

글래스가 신부.사회운동가 출신의 조프리 레지오 감독과 함께 작업한 두 편의 영화다. 각각'균형 잃은 삶''변형 속의 삶'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인도 호피어 제목이다. 지난 7월 부천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됐다.

필립 글래스 앙상블은 이번 공연에서 '코야니스카씨'(14일.88분), '포와카씨'(15일.1백2분)등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등장했던 스코어를 중간 휴식없이 연주한다. 하지만 영상없이 음악만으로 공연할 때는 짧은 버전의 악보를 사용했었다.

14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등장하는 라이브 공연이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영상과 함께 배경음악을 흘려 듣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단순한 영화 상영도 콘서트도 아닌 멀티미디어 공연이다. 제목을 붙이자면 '코야니스카씨/포와카씨 라이브!'정도쯤 될 터이다.

최근 오페라에서도 영상을 곁들이는 것이 유행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무대도 일종의 '영상 오페라'로 볼 수 있다. 영상과 음악의 완벽한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월트 디즈니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환타지아'(1940년)이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코야니스카씨 라이브'는 1987년 가을부터 세계 순회공연 중이다.

'코야니스카씨'는 개봉 당시 영화는 물론 비디오.음반으로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작곡자의 말을 빌리자면"자연에 군림하는 테크놀로지, 현대사회에 대한 성찰"이다.

영상과 음악의 '대화'만 흐를 뿐 아무런 대화나 줄거리도 없다. 주연 배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형 빌딩의 폭파 장면을 비롯, 우주선.기차.탱크.비행기.자동차의 행렬이나 TV 광고 장면만 등장한다.

평온한 자연과 환경 파괴로 점철된 현대문명의 대비에서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집요하게 반복되는 음악과 영상에서 테크놀로지의 만행을 떠올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코야니스카씨'가 자연을 파괴하는 현대문명을 고발한다면'포와카씨'는 서구의 도회지와 제3세계의 농촌 풍경을 대조적으로 그려낸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지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화로 어떻게 삶이 바뀌어가는지 보여줄 뿐이다. 02-2005-0114. (http://lgart.com)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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