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더 하셔야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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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회장님이 더 계속하셔야 해요』『사표를 누구에게 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받아줄 수 없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신천동 새 세대육영회 5층 강당. 청와대를 떠난 지 7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난 이순자씨에 대한 세간의 비난과 의혹의 눈길과는 달리 대의원들은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이렇게 떠나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사람들이 육영회가 뭘 하는 곳이냐고 물어요. 좋은 일 많이 하시고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대의원들의 잇단 「이의」를 입술을 깨물며 듣던 이씨는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만도 뼈에 사무치게 고맙다』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고 이에 대해 대의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응답했다.
이 같은 회의장의 분위기는 회의가 진행된 1시간40분 동안 계속됐다.
오후 2시15분,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1백25명의 대의원들의 기립박수 속에 회장이 입장한 뒤 개회사·국민의례에 이어 회장 인사가 시작됐다. 『(기부자를 보호하기 위한) 저의 이 같은 간절한 노력이 도리어 저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치졸한 행위로 오인된 것에 대해 절망에 가까운 슬픔을 느낍니다.』
『단 한푼의 돈이라도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결벽증을 드러낸다고 할만큼 빈틈없이 운영해 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종 높은 톤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결백을 주장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하거나 박수를 쳤다.
다음 순서인 감사 지적사항 보고에서도 이씨는 사회자의 발언을 11차례나 중단시킨 채 자신이 직접 나서『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거나 해명·부연설명을 하며 그때마다 『이해가 되십니까』라고 되물었고 참석자들은 『네』라고 큰 소리로 대답.
회의의 결론이 「육영회의 잘못보다 오해와 왜곡」쪽으로 굳어지는 동안 단 한차례의 질문도 나오지 않았던 총회는 6개의 토의안건을 의결하는 과정에서도 동의와 재청 이외에 「군말」이 전혀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씨의 「회원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 일간신문에 광고로 나간 뒤 신문사엔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씨가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는 것 같다』 『국민을 뭐로 보고 그 같은 도발적인 변명을 하느냐』는 비난이었다.
일반의 시각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 이날 총회는 마치 6공 바다에 떠있는 5공이라는 외딴섬에 상륙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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