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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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언론 통폐합은 우리도 직접 관련이 있어 가급적이면 의사표시를 절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 10일 문공위 국정감사에서 통폐합 문제를 놓고 오가는 얘기를 보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게나 벼르던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이끌어낸 문공부 측 답변이 고작 "모른다" 와 "신문·방송협회의 자율 결의 이후 행정적 뒤처리를 맡았을 뿐" 이라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 소리 듣자고 그렇게 요란을 떤 국회의원들이나 아직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드는 공무원들이나 그런 바보놀음을 지켜봐야 하는 백성들이 모두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공부 측이 통폐합을 사전에 몰랐다고 하는데, 몰랐을 리가 있겠는가. 모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몰랐다면 직무유기다.
당시 문공부가 언론 통폐합을 주도적으로 기획·입안·추진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기 위한 마지막 보고과정에선 등을 떼 밀려서였든 자의에서였든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문공부의 어느 특정 공무원이 모를 수는 있어도 문공부가 통폐합을 사전에 "몰랐다" 는 얘기는 성립될 수 없다.
더구나 새 시대를 뇌이면서 자꾸 신문·방송협회의 「자율 결의」를 들먹이는 것도 듣기 거북하다. 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80년 11월14일 따로 모여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란 것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자율 결의인가. 「자율」이 아니라 강압에 의해서 였다는 것을 문공부 당국자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최규하 대통령을 거쳐 전두환 대통령으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청와대를 출입하느라 언론 통폐합 과정을 비교적 가까이서 본 편이다. 80년 봄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 운동과정에서 신 군부 주도세력에 의해 배태된 언론 통폐합 구상이 구체화된 것은 그 해 5월말 국보위 발족 직후부터였다. 이미 6월 초순까지는 통폐합의 대강이 마련된다.
군 검열에서 삭제된 부분을 채우지 않고 비운 채 발간한 「백지사건」으로 밉보였던 중앙일보도 그 1차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취재가 됐었다. 그 후 몇 차례 스크린 과정에서 규모가 큰 중앙 종합지들은 제외됐다는 힌트를 받았다.
최후까지 포함여부가 문제된 것은 방송이었다. 민방을 KBS에 통합시키려면 보상을 해줘야하는데 그 재원을 당장 마련하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소극적 의견이 내부에서 나왔던 모양이다.
그 해 11월8일은 토요일이었다. 그 날 전 대통령은 출입 기자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언론 통폐합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전 대통령은 통폐합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방송을 보상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식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보다 얼마 전 당시 보안사령관도 방송 보상에는 돈이 많이 드는데 우리에게 그런 커패서티가 없어서… 라고 대통령과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런 얘기들이 연막이라고 보면 그만이겠지만 당시에는 주도세력 내부에 그렇게만 생각하기 어려운 저류가 있었다. 오히려 당시 주도세력의 나이든 층에는 신중론이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게 사실에 가깝다. 그러자 강행추진 파 측에서 11월 10, 11일 사이에 「연부 보상」이란 아이디어를 내 신중론의 논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 결판 과정에서 문공부 측이 일역을 했다는 게 지금까지 알만한 사람들간의 통설이다.
운명의 11월 12일 (수요일).
오후 5시 반쯤 회사 최고경영자가 보안사에 호출됐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다급한 전갈이 왔다. 부랴부랴 청와대로 들어가 핵심 참모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모르겠다며 매정하게 나가버리고 다른 한사람으로부터 「언론 통폐합과 관련된 통고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당신은 염려 말라」는 두 가지 힌트를 얻어냈다. 더 이상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괜찮다는 얘기인데 TBC의 운명을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피를 말리는 초조와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기관에 불려갔다 밤늦게 나온 분의 전갈은 TBC와 그 인원이 KBS로 통합된다는 비통한 소식이었다. 그때 보안사에 호출됐던 언론사 경영주들은 한결같이 소령 또는 중령 급 장교로부터 이미 결정이 났으니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는 채근을 받고 결국 찍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협의나 의논이 아닌 일방적인 집행 단계였기 때문에 따지고 말고 할 상대가 아니더라는 얘기였다.
이렇게 사전에 모두 일방적으로 밀어 붙여 놓고 이틀 후에 대외용으로 한 결의라는 게 어떻게 「자율 결의」인가. 삼척동자에게 물은들 그것을 「자율」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실상을 호도 하려들기보다는 그때 그렇게 해야했던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는 게 다수를 설득하지는 못해도 일리나마 인정을 받게될지 모른다.
자율 결의였다는 식으로 뻗치기만 하면 일편의 논리도 없이 역시 또 힘으로 밀어 붙였구나 하는 지탄만 더하게 될 뿐이다.
앞으로 또 이 문제에 대해 확인 감사와 증인 신문이 있다니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 의원들은 목소리만 높이지 말고 보다 충실한 준비로 감추려는 진상을 드러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측과 증인들도 이제는 진실을 드러내놓고 변호할 것은 변호하고, 잘못된 점은 사과하고, 심판 받을 것은 심판 받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그래야 언론 통폐합이란 역사의 응어리도 현실이나 역사 속에서 청산되는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편집국장 대리>
@성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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