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선행'은 실패하기 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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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나름대로 수학을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때 와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습니다."(D고 C군)

"분명히 중학교 때 다 배워 아는 내용인 것 같은데 학교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H고 A군)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수학 점수가 많이 떨어졌다고 호소한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수학 천재 소리를 들으며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도 중학교 입학한 이후부터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점점 어려워지는 교과 내용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중학교에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어려워지는 내용은 고등학교에서 겪어야 하는 난이도의 급격한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등학교의 난이도 상승은 철저하게 준비한 학생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다. 학년이 오를수록 개념도 복잡해지고 각 단원이 서로 연결된 문제가 많이 출제되어 일단 진도가 나가면 실질적으로는 그때까지 배운 내용 전부가 시험 범위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주요 과목 이외의 암기과목에도 일부 해당된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의 공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배운 것은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된다."

고등학교에서 수학 성적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중 중학교나 초등학교에서는 수학에 흥미도 있었고 학교 성적도 좋았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원인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대략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무리한 선행이다. 무리한 선행은 학생들에게 당장 수학 문제를 푸는 능력은 키워줄 수 있다. 선행을 하면 새로운 개념을 배우기 때문에 그 개념을 이용해 지금 배우는 내용은 쉽게 풀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현재 배우는 내용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 특히 선행 먼저 하기 경쟁이 붙게 되면 그 결과는 더 좋지 않게 나타난다. 진도는 다 나가 내용은 아는 것 같고, 설명을 들으면 다 아는 내용이라 학습에 몰입하기 힘들어진다. 결과적으로 고등학교에 가서는 적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선행은 기본적으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선행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우선 각 학년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학습 내용을 철저하게 익혀야 한다. 중학교의 기본적인 교과 목적은 계산 능력의 향상과 고등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내용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단원은 고등학교보다 연산이 훨씬 복잡하다. 중학교 과정을 소홀하고 빠른 선행을 하게 되면 개념은 정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중학교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계산 능력은 충분히 학습하지 못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철저한 심화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학생에 따라서는 중학교때 고등학교 과정을 다 끝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해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언제 어떻게 공부를 하든 배운 내용을 철저하게 익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심화 학습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 좋은 성적을 얻을 뿐만 아니라 향후 대학에 진학해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참고서 내용은 전부 알아도 시험에서는 실패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러한 심화 학습이 부족하다. 일반 문제집이나 참고서는 먼저 기본 개념이 잘 설명되어 있고, 또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풀면서 심화 문제에 접근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대충 봐도 잘 풀게 된다. 당장 배운 내용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이 수학을 잘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모의고사 형태의 문제집이나 혹은 학교 시험 수준의 문제를 풀 때는 그 문제를 푸는데 적합한 내용을 생각해 내야 한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바로 다음 문제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때문에 철저하게 내용을 익히지 않으면 생각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문제를 풀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심화학습이 부족하게 되면 수학을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고 조금 심한 경우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마저 상실한다.

또 수학을 잘한다고 착각하고 성급하게 경시 유형의 문제나 혹은 수리 논술 유형의 문제를 학습하는 학생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경시나 수리 논술은 일단 일반 교과 과정이 완결된 후에 공부하게 되는 선택 사항이다. 아무리 경시나 수리 논술 준비가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교과 과정이 약하면 결국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적절한 수학 학습 방법은 어려운 문제보다 기본 개념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문제 위주로 공부하고, 적절한 선행과 충분한 심화를 병행하는 것이다. 심화학습으로 인해 진도가 뒤떨어지는 것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기본 개념과 내용이 철저하게 정리되면 진도는 저절로 빨라진다. [박성진 (수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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