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 샤머니즘의 "앙상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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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건물 주위로 해거름의 그림자가 들기 시작하던 지난 7일 오후 5시30분, 서울 동숭동 바탕 골 미술관의 야외전시장에서는 조금은 기묘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1백50평쯤 되는 야외공간 한 폭에는 서낭당형식으로 쌓아 올린 29대의 비디오 모니터들이 단속적인 효과음을 내며 테이프를 돌리고 있었고, 다른 한족에는 대형 맥주 통 위에 차린 제상을 앞에 두고 청·홍의 무복을 길게 늘인 앳된 무당이 징·강구·바라가 내는 굿거리장단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었다. 주변 외 창과 담·나무에서 미술관건물 옥상으로 엇걸어 늘인 3개의 흰 광목 줄 사이사이에는 울긋불긋한 헝겊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오경화씨(29)의『비디오 통일 굿』(바탕 골 미술관이 10∼11월 두 달간 특별기획 한「야외로의 외출-비디오·조각·섬유 전」의 첫 프로그램)이 펼쳐진 이날의 현상은 20세기의 첨단과학과 원시샤머니즘의 주술성이 어울려 빚어낸 교묘한 공존의 양이었다.
『비디오라는 매체를 우리전래의 무속신앙인 서낭당형식 및 통일바람 굿과 연결함으로써 비디오 예술의 한국적 형상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작가적 표현을 동시에 이루어 내고 싶었다』고 작가 오경화씨는 말했다.
『들녘에 불었던 바람』이란 제목이 둘은 비디오는 8·15해방에서 이산가족 찾기에 이르는 한국현대사의 핵심적 사건들에 대한 다큐먼트에다 진혼의 의미를 담은 김금화씨의 황해도 철물이 굿 장면, 두 명의 배우를 써서 작가 자신이 연출한 상징 마임 장면들을 몽타주 해 넣은 18분 짜리 작품.
다큐 필름의 실제 음과 갖가지 단속적 배경 음을 교차시켜 극적 효과를 높였다.
통일바람 굿은 무녀 정순덕씨(22)가 추었다. 8세 때 강 신을 체험한 정씨는 서울 이문동에서 무당 일을 하면서 무형문화재 김금화씨의 신딸로 그의 내림굿을 전수하고 있다. 굿은 전비 8도의 산신들을 한자리에 모셔다가 화해시키고, 이어 을지문덕·강감찬·이순신 등 충의용장들로 하여금 액운을 낀 사역의 잡신들을 물리치게 한 다음, 역사의 뒤 안에서 피 흘리고 죽어 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등 세 가지 의식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베가 름 때 나뉜 베 줄기를 꼬고 푸는 격렬한 몸짓과 함께 간간이 통일을 기원하는 사설을 풀어내던 정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의 고향이 황해도지요. 따지고 보면 저도 실향의 한을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고 그는 말했다.
작가 오경화씨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84년 프랑스로 건너가 국립파리 제8대학 조형예술학파 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논문은『나의 비디오작업과 비디오 미술에 대하여』.
86년 귀국한 뒤 금년 3월말에는 서울 수 화랑에서 죽음이란 실존적 문제를 다룬 10분 짜리 비디오설치 작품『별이 된 친구를 의하여』로 제1회 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작품은 제목 그대로 납북 후 생사를 알 길 없는 외할아버지(경남 함양출신 제헌의원 김경도씨)와 얽힌 개인적 한과 우리역사의 궁극적 지향이 될 통일에의 의지가 기본 모티브였다.
1백여 명의 관람객들과 작업진행을 지켜본 평론가 박신의씨는『실내가 아닌 야외설치를 택한 데다 특별히 통일이라는 주제로 대중접근을 꾀함으로써 종래 의미 없는 이미지만을 생산해 내던 소비적·유희적 비디오예술의전형을 깼다』고 평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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