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미국 국가대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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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네소타팀에서 활약하던 박용수 선수가 한 경기에서 득점한 뒤 손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하고 있다. [미네소타 AP=연합뉴스]

올 2월 13일.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밴쿠버 캐넉스의 한 교체 선수가 홈경기에서 시즌 열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1m90㎝ 이상되는 키에 몸무게가 100㎏을 훌쩍 넘는 거구들이 우글거리는 링크 위에서 1m80㎝.86㎏의 '왜소한' 체격이 오히려 돋보였다. 관중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헬멧을 벗자 새까만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땀에 젖은 얼굴은 그가 동양인임을 알게 했다.

박용수. 미국 이름은 리처드 박으로 올해 서른 살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유명 선수로 재미동포와 동양계 소수민족의 영웅이자 아이스하키 스타를 꿈꾸는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미국의 아시아계 최대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골드시'가 선정한 아시아계 미국인 이민 역사상 가장 두각을 나타낸 6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날 그에게 쏟아진 박수는 시련을 딛고 재기한 영웅에 대한 환호와 격려였다.

박용수의 빙판 인생에는 영광과 시련이 교차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79년 미국으로 이민간 박 선수는 94년 피츠버그 펭귄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체격과 체력의 열세로 98년 마이너리그로 강등됐고 99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 오일뱅커스에서 잠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1년 몸을 만들어 신생팀 미네소타로 옮긴 박용수는 오른쪽 공격수 자리를 굳혔고, 소속팀을 2002~03시즌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그 뒤 스웨덴과 스위스 프로팀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8월 연봉 75만 달러에 밴쿠버와 계약, NHL로 돌아왔다. 지난해 12월 경기에서 크게 다쳐 13경기나 결장했지만 거뜬히 재기했고 부상 전과 다름없이 맹활약하고 있다. 아이스하키 팬들은 '올 시즌 밴쿠버에서 가장 놀라운 활약을 하는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에서 박용수를 1위로 꼽기도 했다.

1일 미국아이스하키협회 홈페이지(www.usahockey.com)에는 박용수가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선발됐다는 소식이 올랐다. 5일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열리는 세계아시스하키선수권대회에 출전할 15명의 미국 대표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이 오른 것이다. 2002년과 2004년, 2005년에 이어 네번째 대표팀 발탁이다. 올 시즌 밴쿠버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60경기에 나와 8골, 1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잦은 부상에 굴하지 않고 재기한 박용수야말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영웅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성백유 기자

◆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미식축구(NFL), 야구(MLB), 농구(NBA)와 함께 미국 4대 프로 스포츠 가운데 하나다. 10월 중순 시즌이 개막돼 4월 초까지 6개월간 정규리그를 치르며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2개월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스탠리컵의 주인을 가린다. 30개 팀이 동부와 서부 콘퍼런스로 나뉘어져 82게임의 정규리그를 치러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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