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5월』을 한으로 남긴 두 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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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작가 한수산씨가 지난9월 장기체류예정으로 일본으로 떠난지 보름 남짓 후인 2일 시인 박정만씨가 투병 끝에 숨겼다.
한 소설가의 떠남과 한시인의 죽음은 전혀 별개의 일일 수 있지만 문인들은 지난81년 5월 소위「한수산 필화사건」으로 두 사람이 함께 모처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생이 심한 굴절을 겪었다는 것 때문에 그들의 한을 새삼 떠올린다.
「한수산 필화사건」은 81년 한씨가 신문연재소설을 쓰면서 정부의 고위층을 비아냥거렸다고 하여 한씨와 한씨를 알고있는 문인·언론인 7명이 영문도 모르는 채 꼴려가 심한 고초를 겪은 사건이다. 한씨는 그 사건 이후 정서불안증세를 보여 10여일씩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하는 버릇을 보여 문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박씨도 그 이후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받았고 끝내는 요절하고 말았다.
한수산씨는 부인이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장기체류 할 뜻을 보였다고 한다. 작가인 그가 그에게 말과 삶을 준 이 땅을 영원히 등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작가로 하여금「이 땅을 떠나고싶다」,「이 땅을 떠나있으면서 자신을 다시 정립해보고 싶도록 만든 사회」는 과연 무엇인가를 그의 떠남을 통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수산씨가 자주 드나든 출판사의 편집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을 당하고「나를 죽인 것은 5월의 그 날이다」라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박씨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81년은 이들 문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 독재정권의 횡포가 자행되던 때였다. 지금 한 시인의 죽음과 한 소설가의 떠남은 다시는 그 같은 인간을 말살하는「비인간성」이 지리잡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다짐케 한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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