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KGB」영향력 쇠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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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85년「미하일·고르바초프」소련 공산당 서기장 집권 시 중요역할을 담당했던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단행된 대규모 인사이동에서 KGB의장이 정치국 위원명단에서 빠짐으로써 모스크바주재 서방외교관들 사이에선 소련의 또 다른 권력기관으로서 그동안 공포의 대상이 돼온 KBG의 영향력이 크게 쇠퇴하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30일 갑작스레 소집된 당 중앙위와 최고회의 회의에서「고르바초프」서기장은 KGB의장 「빅토르·체브리코프」를 변호사출신으로 비정치적인 테크노크래트「불라디미르·크류츠코프」로 바꾸었다.
「고르바초프」등장 후 최대의 인사조치로 평가되는 이번 인사이동에서 4명의 정치국 멤버가「은퇴」형식을 빌어 제거됐다. 이들은 모두「고르바초프」서기장의 오랜 정적들이다.
정치국내 위원들의 담당도 통·폐합 됐다.「고르바초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평가되는「예고르·리가초프」는 이데올로기담당에서 별다른 실권이 없는 농업담당으로 밀려났다.
전 KGB의장「체브리코프」는 KGB의장인 동시에 정치국의 12인 정치위원의 한사람이었으나 이번에 KGB의장이 된「크류츠코프」는 지난20년 간 KGB에서 근무한 사람. 정치적 영향력이 별로 없으며 그 자신 비 정치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 서방외교관은「고르바초프」서기장이 KGB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소련을「법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기를 원한다면 KGB에 대한 견제가 선결문제다. 이를 위해 그는 KGB의 정치적 영향력 축소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번 인사가 그 시작이다』고 지적했다.
「스탈린」치하 KGB는 법 그 자체였으며「스탈린」의 대숙청을 앞장서 추진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영향력의 면에서 소련 군부의 그것에 비해 한 수 아래에 위치해 있다. 소련군부의 대표적인「드미트리·야조프」국방상은 정치국·후보위원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KGB의장이던「체브리코프」를 정치국 정 위원으로 승진시킨 것은 바로「고르바초프」자신이었다.
외교소식통들은 85년「콘스탄틴·체르넨코」서기장이 사망했을 때「고르바초프」가 라이벌인「그리고리·로마노프」와「빅토르·그리신」을 제치고 서기장 자리에 오른 것은 바로 KGB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85년 KGB의장「체브리코프」를 정치국원으로 승진시킨 것은 이에 대한 논공행상의 성격이 짙었다.
그동안「고르바초프」서기장은 당내 및 군부내의 구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느라 KGB에 대해선 될 수 있는 한 간섭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최근 자신의 권력기반이 확고한 것임을 확인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확신하면서부터 그동안 일종의 정략적 동맹관계에 있었던 KGB에 대해서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1917년 공산혁명이후「레닌」이 만든 비밀경찰로 시작된 KGB의 역할은 법전보다도 관례와 필요에 따라 규정되어 왔다.
심지어「고르바초프프」정권 하에서도 KGB는 안보를 내세워 수시로 법률을 무시하고 소련헌법에 의해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르바초프」는 KGB가 당이 아니라 정부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믿고 있다.
86년「고르바초프」가 개방정책을 도입하고 소련사회에 민주주의 확대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면서부터 내부반대자에 대한 제재기관으로서의 KGB의 역할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정치범이 강제노동소로 보내지기보다는 석방되는 추세였다.
86년 반체제학자「안드레이·사하로프」박사를 국내 추방으로부터 해제한 사실은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고르바초프」의 관용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것이었지만 KGB관리들은 이에 반대했다고 외교관들은 말했다.
『KGB가 지금 형태로는「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적합하지 않다. KGB는 그 자체가 법이었던「정치적 동물」로부터 법을 실행하고 준수하는 기관이 되어야할 것』이라고 한 외교관은 말했다.
【모스크바 UPI 연합=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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