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완승으로 끝난 16년만의 대결<88서울 드라마-명승부 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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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올림픽 빅 이벤트 중 하나로 꼽아온 미국-소련의 남자농구 대결은 예선부터 치밀한 선수관리로「위장전술」을 펴온 소련의 완승으로 결말이 났다.
소련은 이번 올림픽 최강신의 센터「아르비다스·사보니스」(2m23㎝)를 예선전에서는 1패의 위험을 무릎 쓰면서까지 크게 활용하지 않다가 이날 대미국전에서 풀 가동, 예측불허의 기습공세를 펼쳤다.
이 때문에 미국은 특유의 강력한 대인방어와 속공플레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채 시종 소련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 72년 뮌헨올림픽 결승에서 미국에 1점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소련은 이로써 실로 16년만에 벌어진 미-소의 올림픽 대결에서 더 이상 변명이 필요 없는 깨끗한 승리를 획득,「올림픽 농구사상 최대사건」을 연출해 냈다.
미국은 뮌헨올림픽에서 후반종료 총성과 함께 파울이 선언돼 3초간 경기가 연장, 이 짧은 순간에 소련에 골을 허용하고 패하자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로 지금까지 당시의 은메달 수여를 거부해 오고있다.
이날 경기는 잠실체육관의 관중석 절반 가량을 미국인이 차지한가운데 미NBC-TV가 미 전역에 생중계, 미국 TV시청률 최고를 기록하는 등 관심이 큰 만큼 미국인에겐 충격도 크다.
미국은 농구의 본고장으로서 강한 자존심을 갖고있고 지난 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남자농구가 처음 채택된 이래 뮌헨대회를 제외하고 올림픽을 석권해 온 위력이 농구열기를 과열시켜왔다.
그러나 이날 결과는 미국의 참패. 미국의「존·톰슨」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소련 팀에 왜 졌는지 모르겠다. 시작을 잘 못한 것이 패인인 것 같다. 시종 따라잡기 식으로 게임을 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며 낭패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은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정상을 재탈환한 뒤 그 동안 다시 세계 최강으로 군림해왔는데 이날 패배로 올림픽출전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치욕」을 함께 맛보아야했다.
이날 경기에 앞서 미 프로농구 (NBA) 래프트 된「사보니스」가 예선전에서 전 게임을 뛰기보다는「벨로스테니」(2m14㎝)와 교대로 센터를 맡아 가급적 기량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소련의 이 같은 작전 때문에「사보니스」는 지난 4월 연습도중 입은 오른쪽 발목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완치되지 않았다는 분석과 함께 소련센터진의 느린 플레이로 보아 미국의 승리가 틀림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반면 미국은 NBA 드래프트 1순위인「데이비드·로빈슨」(2m13㎝와「테르만·라이드」(2m6㎝등 장신센터를 더블포스트로 내세워 예선전부터 화려한 골 밑 플레이를 과시해왔다.
예선에서도 미국은 5전 전승으로 8강에 올라 준준결승에서 푸에르토리코를 가볍게 물리치고 준결승에 올랐으며 소련은 예선에서 유고에 1패를 당해 조2위로 준준결승에 올라 브라질을 꺾고 준결승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미-소 대결이 막상 시작되자「사보니스」는「신기의 센터」라는 평가에 걸맞게 골 밑을 완전 장악하고 미국의「로빈슨」·「라이드」더블포스트를 무력화시켰다.
미국농구의 특징은 강력한 디펜스로 상대팀이 실수를 범하거나 슛을 난사하게 유발하면서 흑인 특유의 탄력으로 리바운드를 잡아내 이를 속공으로 연결하는 체력전. 그러나 이날 미국의 강력 디펜스는「사보니스」에 의해 여지없이 와해됐고 골 밑 플레이에서도「사보니스」가 거구에도 불구, 민척한 플레이로 리바운드 (13개)를 장악, 미국은 공·수 양면에서 속수무책의 전력을 드러냈다.
미국의「로빈슨」은「사보니스」에 대항, 덩크슛 등을 터뜨리며 치열한 골 밑 몸싸움을 벌였으나 체력에서 열세를 드러내 단19득점에 그쳤고 미국의 또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인 「대니·매닝」은 17분간 뛰며 단1점도 기록하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다.
소련은 전반초반「사보니스」가 재빠른 패스웍으로 미국진영을 돌파, 연달아 골밑슛을 성공시키고 슈터「쿠르티나이티스」등이 외곽 슛을 잇따라 터뜨려 전반 10분쯤부터 미국을 8점차로 앞서 나갔다.
점수 차가 벌어지자 미국은 지역방어에서 강력한 맨투맨방어로 전환, 소련의 공격을 봉쇄한 뒤 소련선수들의 범실을 틈타「대니엘·마예리」(15점)「로빈슨」등이 외곽 슛을 연달아 터뜨려 전반12분쯤 27-27 동점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후 소련은 골밑슛 뿐 아니라「쿠르티나이티스」등 외곽 슈터가 정확한 3점 슛 공세를 집중적으로 펼쳐 다시 앞서기 시작, 전반을 47-37로 리드한 채 끝냈다.
후반 들어 미국은 팀웍을 재정비, 특유의 올코트프레싱으로 소련의 패스미스를 유발한 뒤 인터셉트한 볼을 연달아 골로 성공시켜 후반6분쯤 52-50, 2점 차까지 바짝 추격했다.
소련은 미국이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면서 잦은 파울을 범해 후반10분쯤 팀 파울에 걸린 틈을 이용, 적극공세로 얻어낸 잇따른 자유 투를 성공해 다시 점수 차를 벌려 나간 뒤 이후 공격의 리듬을 잃은 미국을 집중공략, 결국 6점차로 쾌승을 얻었다.
이날 양팀의 기록을 보면 소련은 3점슛 적중률 (41%-57%) 에서 미국에 뒤졌을 뿐 야투율 (45%-43%) 리바운드 (32-31) 어시스트 (14-4) 에서 앞서 단연 우세한 경기를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파울은 2l-33개로 미국이 훨씬 많았다.
소련의「알렉산드르·고멜스키」감독은『미국은 그들의 말대로「위대한 팀」이지만「사보니스」를 잘 몰랐다』고 지적하고 예선 때와는 전혀 다른 팀처럼 잘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예선보다는 마지막 경기가 더 중요하며 이를 감안하는 것이 작전』이라고 답변했다. <제정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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