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나 검찰 측서 언론 플레이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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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있기 하루 전인 27일 외부로 유출돼 그 경위를 놓고 검찰과 현대차 측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에 적시된 구체적 혐의 사실은 28일 오전 한 언론에 기사화됐다.

채동욱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구속영장이 유출된 것 같다"며 "수사기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수사를 중단하더라도 경위를 철저히 밝히고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겠다"고도 했다.

형법(126조)은 '검찰.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나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얻은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미리 본 사람은 수사검사 2명, 최재경 중수1과장, 수사기획관, 박영수 중수부장, 정상명 총장 등 6명뿐이라고 채 기획관은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검찰이 정 회장에 대한 혐의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 회장의 부도덕성을 강조하고, 비자금 용처를 밝히기 위해서는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것이다.

채 기획관은 하지만 "우리 쪽(검찰)에서 구속영장을 흘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에서는 구속영장을 본 사람이 특정되는데 누구 목이 10개라고 그런 짓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회장의 변호인이 구속영장을 넘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원은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영장실질심사 준비를 위해 선임계를 제출한 변호인에게 구속영장 사본을 준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었던 2002년에 집중돼 있는 현대차의 비자금 조성 내역을 미리 공개함으로써 정치권에'제2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발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띄웠다는 해석이다. 특히 수사 당시 현대차 측에서 '차떼기'로 100억원을 건네받은 사실이 나타난 한나라당에 비해 6억6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결론이 난 노무현 대통령 측은 용처 수사가 진행될 경우 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권에 대한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의 변호인은 "의뢰인의 비리가 담긴 구속영장을 변호인이 언론에 넘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영장 내용 일부가 유출된 적은 있으나 영장이 별지와 함께 통째로 외부로 흘러나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검찰이나 현대차 측이 특정 목적으로 언론을 이용하기 위해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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