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대첩〃우리에게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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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팀창단 불과 7년만에 세계정상에 우뚝 선 16명의 낭자들. 세계는 그들의 지옥 훈련에 경악했고 금메달조차도 고난을 이겨낸「빨간 땅벌」들의 노력에는 미흡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금메달을 따 비 인기종목 그늘의 여자하키 설움을 씻어야 결혼하겠다』며 혼기마저 지나쳐 버린 선수가 6명.
팀 전원의 평균연령이 24세. 여자 팀으로선 노장에 속하는 이들은 피를 나눈 한가족이상으로 더욱 끈끈한 정으로 뭉쳐있다.
82년1월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대표팀이 구성된 이래 팀의 골격이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이들은 6년 동안 집을 떠나 한곳서 한솥밥으로 생활해왔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도 볼을 패스할 수 있을 조직력은 바로 한솥밥생활에서 익힌 것이다.
27일 영국을 제치고 금메달 결승에 진출, 2만5천여 관중을 열광시키며 한국여자하키 돌풍을 일으킨 여자하키 선수들은 그 동안 받아온 천덕꾸러기 푸대접을 승리로 멋지게 갚은 셈이다.
82년 팀이 창단 됐지만 연습경기장은 따로 없었다.
맨땅 운동장서 뒹굴어야했던 낭자들의 무릎은 연일 피가 흐르고 고운 얼굴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7년 동안 각고의 팀을 다독거려온 주장 정상현양(26)은『운동장 하나 빌 수 없어 이 지방 저지방을 떠돌 때는 당장 스틱을 내팽개치고 시집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82년 아시안게임 출전 때는 잔디구장 적응훈련을 위해 출국 한달전 여의도 KBS 건물 뒤 잔디구장을 빌어 광목으로 줄 표시를 한 채 연습한 l6명의 낭자들은 설움을 받을수록 집념이 강해졌다고 한다.
하루 1백㎞ 이상을 뛰어야 잠을 잘 수 있고 7시간을 운동장에서 뒹굴어야 몸을 씻을 수 있었던「빨간 땅벌」들.
『이번 올림픽 메달이 마지막 은퇴무대 선물이 될 거예요. 7년 동안 시집도 미룬 채 하키에 땀을 쏟아온 임계숙·진원심·정상현·최춘옥 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남은 땀 한 방울을 대 호주일전에 모두 바칠 각오다.
1세기의 전통을 지닌 세계 강호들을 무릎 꿇린 6년의「지옥훈련」.
「빨간 땅벌」하키 낭자군의 30일 결전은 한국 하키의 이정표를 세우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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