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비리」로 지탄 받자 재수사|「용팔이 사건」 주범 김용남씨 잠행 1년5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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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4월24일 통일민주당서울관악지구당 창당대회장을 각목으로 습격, 정치테러를 함으로써 국민의 관심을 모아온 세칭 「용팔이 사건」의 주범 김용남씨(38·전과7범·별명 용팔이)가 검거돼 1년5개월만에 사건전모가 밝혀지게 됐다.
그동안 『안잡는 거냐, 못잡는 거냐』는 논란 속에 부진했던 사건수사는 경찰이 본격적으로 검거에 나선지 불과 1개월 여만에 배후로 알려진 전신민당 청년 제1부장 이선준씨(46)의 검거에 이은 것으로 이들의 배후와 경찰의 늑장수사 경위 등 본격수사는 이제부터 시작되게됐다.
◇용팔이 사건=지난해 4월 「이민우 파동」에 이어 통일민주당이 신민당에서 분당, 지구당별로 창당대회를 갖게되자 전국 48개 창당대회장 가운데 21곳이 「괴청년」들로부터 각목세례를 받았다. 치안당국은 잇따른 폭력사태에도 불구하고 「당내문제」(이영창 당시치안본부장), 「정당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정호용 당시내무부장관)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방관하다 빗발치는 여론에 밀려 3∼4일 후에야 비로소 수사를 시작, 의혹의 불씨를 남겼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착수 후에도 검거된 용의자 65명중 1명만을 구속하고 나머지는 물어주어 「용팔이」 등 주동자 10명을 검거하지 않은 것은 창당방해라는 이사건의 정치적 목적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봤다.
특히 일선경찰들 사이에는 당시 멋모르고 「용팔이」 검거에 적극성을 보이려다 경찰이 여론과 「외부기관의 압력」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놓었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재수사=지난달 30일 치안본부는 그동안 「5공 비리」의 하나로 지탄받아온 이 사건을 재수사키로 결정하고 서울시경·관악경찰서 등에 전담반을 설치, 주범검거에 나서 불과25일만에 김용남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경찰에서 『창당대회난동 사건 중 서울관악·인천북구지구당 등 5곳은 내가 지휘했다』며 당시 신민당 총무부국장 이씨로부터 분당저지부탁을 받고 폭력을 쓰게됐다고 말하고있다.
김씨는 또 관악지구당 창당방해에 함께 참여한 이선준씨에 대해서 『대회장 습격 때 우연히 맞닥뜨렸을 뿐 우리 쪽과는 다른 패거리』라며 연계성을 부인했다.
한편 이씨는 『범행 전날인 23일 서울 공평동 「한국정책연구소」(이사장 이철승 전의원)의 김모 비서실장으로부터 30만원을 받기는 했으나 이는 야당 당원으로서 통상적인 일』이라며 『이 사건과 관련해 나와 「용팔이」, 또는 이전의원과 연결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배후관계를 계속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점=창당대회장 각목습격 때 「용팔이」 일당은 대형버스로 「지방주먹」을 대거 상경시켜 호텔 등 숙식처를 제공한데다 전국을 돌며 대낮 난동을 부려 조직력·자금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알고도 공권력 개입을 꺼렸으며 사후 수사에도 늑장으로 일관,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든든한 배후가 있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가능케 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부분에 대한 수사경위를 밝히지 않고 있다.
또 용팔이가 1년5개월씩이나 도피하며·연고지·서울집 등을 10여 차례나 들락거렸다고 말해 경찰이 그동안 검거에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온 나라가 올림픽으로 떠들썩한 시기를 택해 검거됨으로써 의혹을 더하고있다.
일부에선 국회 「5공 비리특위」 등의 집중포화를 미리 계산, 여론서 한발짝 비켜 이·김씨 두 사람만 구속시켜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 아니냐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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