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역경딛고 「인간한계」들었다|단번에 세계신 6개…인간기중기「슐레이마노글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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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자신의 몸무게 3배를 넘어 3·l18배를 들어올리며 한꺼번에 6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괴력의 사나이 「나임·슐레이마노글루」(2O)는 누구인가. 그의 신기록 행진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하도 신기록을 많이 세워 AP통신은 59번, AFP통신은 80번이라고 전하는등 기록횟수에 혼선이 빚어질 정도다.
인간기중기「술레이마노글루」는 키1m55cm의 단구로 상체가 하체보다 길어 기형적이긴 하나 짧은 금발에다 영화배우 「더스틴·호프만」을 닮은 미소년이다.
그는 신기록대행진만큼이나 숱한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기네스북에서조차 그의 이름이 거론된 전무후무할 역사다.
지난83년 15세의 나이로 용상세계신기록 (1백60㎏)을 세우자 기네스북은 세계최연소신기록보유자로 그의 이름을 올렸다.
「나임·살라마노프」라는 본명이 말해주듯 그는 불가리아인이었다.
86년11월 호주 멜버른 갈라컵대회에서 불가리아팀을 이탈, 터키로 망명했다.
『불가리아는 84년부터 소수민족인 터키족을 차별하며 이름을 고치도록 강요했다. 나는 그때「술레이마노글루」란 이름을「살라마노프」로 바꿨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불가리아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1백만명의 터키인들이 이름을 바꾸어 살고 있다. 이름을 찾기위해 망명했다.
경기가 끝난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터키의 생활에 절대만족한다. 지금 매우 행복하다. 훈련시설도, 코치도 너무 홀륭하다. 다만 부모와 두형제들을 만날수 없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울 뿐이다. 불가리아정부측에 부모와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가끔 전화로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는하지만…」
망명후 그는 터키대통령의 양자로 들어갔다.
터키정부는 그에게 집도 주고 많은 상금도 주었다. 터키 국민들은 그가 불가리아에서 영웅 대접을 받은것처럼 그를 추앙하고 성원해 주었다.
『서울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 터키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려 했다』
새조국을 찾아 이름을 바꾼「슐레이마노글루」는 한때 비운을 맞는듯 했다.
국제역도연맹(IWF)은 그가 국적을 마음대로 바꿨다고해서 1년간 출전정지시켰다.
IOC도 규정에 따라 3년동안 각종 대회출전금지명렴을 내려 선수생활에 치명적인 사형선고를 내렸다.
84년 LA올림픽에는 공산권의대회 보이콧으로 세계최고기록을 갗고 있으면서도 출전하지못했다.
그러나 IOC의 규정에는 「당사국간의 합의」라면 출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불가리아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터키정부의 간청을 받아들여 1백5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츨전을 허용했다.
불가리아의 「루세프·얀코」코치는 『 「살라마노프」는 아직도 불가리아의 영웅이다. 지금도 불가리아는 제2의 「살라마노프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역도장을 찾고 있다. 젊은이들은 그의 이름만 나와도 열광한다. 그는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망명한후 주위 사람들은 환경도 바꿔고해서 좋은 기록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으나 첫출전한 지난4월 영국카디프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인상 1백50㎏을 마크,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가는 대회마다 신기록을 제조해냈다.
그가 10세때 첫바벰을 잡은 후 14세때부러 대회에 출전, 그동안 59개의 신기록을 제조해냈다. 서울대회 6개까지 합하면 모두 65개.
그가 망명하자 불가리아는 그를 꺾을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날 60초급에서 경합을 벌여 은메달을 차지했던 「스테만·토프로프」.
카디프대회때 그는 61·5㎏급에서 60㎏급으로 체급을 낮추었다. 그러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슐레이마노글루」를 발굴, 오늘의 역도천재로 키운 「이반·아바드지예프」 불가리아수석코치는『그를 이길 선수를 반드시 만들겠다. 그가 「토푸로프」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반· 아바드지예프」가 그의 마음속에 담아 아꼈던「슐레이마노글루」는『오늘날의나를 만든 것은 그분의 공이 크다. 나는 그를 잊을 수 없다』며 사제지간의 따뜻한 정도 보였다.
그러나 이날 대회에서 「술레이마노글루」와 「아바드지예프」는 끝내 조우하려 하지않았다.
이날 「술레이마노글루」와 대결을 벌인 「토푸로프」도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대결소감을 퉁명스럽게 밝혔다.
사실 체중한계 3배를 들어 올린것은 「토푸로프」가 한발 앞섰다.
83년10월 모스크바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60㎏급의 「토푸로프」는 용상에서 1백80㎏을 거뜬히 들어 전대미문의 「장사의 꿈」을 이뤘다.
「술레이마노글루」는 16세인 84년 용상 1백70·5㎏(56㎏급)을 기록, 체중 3배를 넘어선 뒤 60㎏급으로 체급을 올려 1백86㎏(85년), 1백87·5㎏(86년) 1백88㎏(86년), 1백90㎏(88년)등 잇따라 용상기록을 경신, 신화적인 존재로 부각됐다.
인체공학전문가들조차 역도기록의 한계가 체중3배라고 주장했고, 기중기의 최대인 양하중도 몸체무게의 1·2∼1·3배에 불과한 형편.
『TV를 지켜볼 5천6백만명의 터키국민이 힘의 원천입니다.』그가 말한 괴력의 비결이다.

<방원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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