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 회장 구속' 흘려놓고 발표 하루 늦춰 여론 떠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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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회장 구속'시사=검찰 주변에서 갖가지 추측과 분석이 나왔다. 수사팀은 정 회장을 구속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펴왔다.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비자금 조성 등의 주요 혐의에 대해 공소유지가 어렵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다. '수사팀과 갈등이 없었다'는 말은 '정 회장=구속'이라는 수사팀의 의견을 정 총장이 수용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적절한 결론'은 '정 회장 구속-정 사장 불구속'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정 회장 부자(父子)를 모두 불구속하는 방안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정 총장은 결정을 했지만 발표를 27일로 늦춰 마지막까지 여론의 동향을 살피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췄다. '정 회장=구속'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놓은 뒤 각계의 반응을 보고 최종 결단을 내리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다.

◆ 고민 거듭한 검찰총장=정 총장은 그동안 현대차의 기업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편법 승계 등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놓고 고심해 왔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비자금 조성 등 범죄 혐의가 있고 죄질이 무거운 만큼 이를 주도한 정 회장을 구속하자는 의견이 검찰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반면 국가경제에 기여한 역할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현대차가 비자금을 조성한 근본적인 목적이 정의선 사장의 후계구도 굳히기였던 만큼 수혜자인 정 사장을 구속하는 것이 맞다는 말도 있었다.

26일 정상명 검찰총장의 하루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오전 8시55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던 정상명 검찰총장은 "하루 종일 고민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정 총장은 약속된 점심식사로 외출했을 뿐 하루 종일 사무실을 지켰다. 외출 직전 기자들을 만나서는 한숨만 내쉬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오후 5시쯤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으로부터 정 회장을 구속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수사팀 의견을 보고받았다.

오후 6시쯤 강찬우 대검공보관은 "총장께서 오늘 중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정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신병처리에 대한 결정이 27일로 늦춰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에 수사팀의 의견과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당초 유력했던 '정 회장 구속-정의선 기아차 사장 불구속' 방침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상황은 한 시간 만에 반전됐다. 정 총장은 오후 7시 퇴근길에 기자들에게 "수사팀과 이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 구속'을 시사한 것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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