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긴장...환호 한편의 멋진 드라마|첫 「은」안겨준 역도를 보 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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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역도 52㎏급 경기가 진행된 약2시간의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은 환호와 침묵, 흥분과 긴장이 엇갈리며 조화를 이룬 한편의 멋진 드라마였다.
특히 기대를 뛰어넘은 전병관의 선전,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중국의 흑진주「허줘창」(하작강) 의 실패는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쟁취한 불가리아 「마리노프」의 승리를 눌러 덮을 정도로 흥분과 의외성이 교차한 역도경기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날 오후9시부터 약2시간동안 진행된 52㎏급 경기에는 한국역도 경기사상 최대 규모인 약3천명의 관중이 운집, 환호와 침묵을 순간 순간마다 적절히 포착해 분출한 수준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동안 비 인기 종목으로 빛을 못 보던 한국 역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의외성은 첫번 경기인 인상부문에서 하작강이 1백12·5㎏의 첫 시도에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하선수가 1백12·5㎏에 실패하자 관중석은 이를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의외의 사건으로 인식, 그럴 수가 없다는 탄식을 했으며 하 선수 역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수준 높은 우리 관중들은 얼굴이 일그러진 하 선수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1백12·5㎏을 두 번째 시도해서 성공한 하 선수는 세 번째로 1백17·5㎏에 도전했으나 이 마저 실패하자 그의 코치인「리썬」(이침)은 좌불안석. 이에 반해 하선수의 맞수인 불가리아의 「마리노프」는 1백12·5㎏, 1백17·5㎏을 무리 없이 통과한 후 3차에서는 세계기록을 경신하는 1백2O㎏에 성공하자 주먹을 불끈 쥐고 펄쩍펄쩍 뛰었으며 3천여 관중들은 환호와 함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전은 인상에서 1백12·5㎏을 들어올려 5위. 이 때까지만 해도 은메달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인상경기가 끝나고 10 분간의 휴식을 가질 때만해도 각 국 임원들 및 취재진들의 관심은 「마리노프」에게 7·5㎏이나 뒤진 하 선수가 과연 용상에서 이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인지에 집중됐다.
전병관선수에게는 『제발 동메달이라도 따주었으면…』하는 주최국 관중으로서의 안쓰러운 기대가 있었을 뿐이었다.
용상경기가 시작됐을 때도 수십명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셔터는 여전히 하 선수와「마리노프」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이미 자신감과 평형을 잃은 하 선수는 용상에서도 1백후45㎏에 두 번이나 실패.
하 선수는 3차 시도에서 1백45㎏에 성공했으나 고개를 떨구고 무대를 물러났다.
반면「마리노프」는 인상·용상 두 부문에서 6차례 시도에 모두 성공.
이로써 「마리노프」 와 하작강의 승부는 결말이 나고 관심의 초점은 전병관이 은메달을 딸 수 있느냐에 집중, 역도경기장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인상에서 하 선수와 전 선수는 똑같이 1백12·5㎏을 기록했다.
용상 1차에서 1백40㎏을 통과한 전 선수는 1백47·5㎏의 2차 시도에 들어갔다.
여기서 성공하면 바로 은메달.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짧은 침묵 속에서 전 선수는 1백47·5㎏의 바를 힘차게 가슴까지 꺾어 올렸으며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또다시 머리위로 들어올렸다.
성공이었다. 3천여 관중은 합격을 알리는 전광판의 흰색 표지판이 켜지기도 전에 일제히 일어나 환호를 올렸다. 전 선수는 거듭 거듭 뛰었다. 오른손을 높이 들고.
그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리노프」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려면 10㎏을 더 올려야 한다. 전 선수는 무리인줄 알면서도 1백57·5㎏을 신청했다.
세계기록은 1백53㎏. 이를 4·5㎏이나 넘기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3차시도의 전광판이 1백57·5㎏으로 바뀌고 아나운서가 1백57· 5㎏ 시도를 선언하자 경기장의 흥분은 절정을 이뤘다.
전선수를 응원하는 우레와 같은 박수, 천둥과 같은 환호가 일순 정적과 침묵으로 변했다.
그러나 1백57·5㎏은 역시 무리였다. 꺾기에 실패한 전선수가 뒤로 물러나자 3천여 관중은 이에 실망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은메달을 축하하는 환호와 찬사의 박수를 보냈다.<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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