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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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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정치부 기자

김경희 정치부 기자

“기자는 한 달에 몇 번 쉬어요?”

3년 전쯤 언론인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받은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이라는 게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기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뭔가요” 혹은 “논술·작문 연습은 어떤 식으로 했나요” 등에 대한 모범 답안들을 준비해갔는데 ‘기자의 복지’가 가장 큰 관심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땐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작년엔 회사 견학을 온 중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멘토 기자’로서 궁금증을 해소해주라는 미션을 받았는데, 이때 나온 첫 질문은 “기자는 한 달에 얼마나 버나요?”였다. 답하기 곤란해서 “얼마를 받으면 적당할 것 같으냐”고 되물었더니 저마다 기준이 달랐다. 무조건 많은 돈을 원할 거라는 건 내 착각이었다.

두 질문의 핵심은 기자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지난 3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07명을 대상으로 ‘회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건’을 물었는데 ‘워라밸이 가능한지를 본다’는 응답이 55.2%로 1위였다. 일부 기업들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워라밸 플랜’을 먼저 내놓고 있다. 앞으로 언론사들도 여기서 마냥 자유롭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도입되는 ‘근로시간 단축(주 52시간 근무)’ 제도는 워라밸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직장인들이 모이면 근로시간 단축이 늘 화제에 오른다. 대체로 불필요한 업무 지시나 ‘눈치 야근’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꼭 필요한 야근이나 추가 근무도 근태 불량으로 치부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몰래 근무’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30대 직장인 A씨는 “기존 업무에 지장이 없으려면 사람을 더 뽑는 게 최선인데도, 한정된 인력으로 ‘스마트 워크’를 하라니 개인 부담만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야근수당을 받아도 매달 빚 갚기 빠듯했는데 이제 ‘투잡’을 해야 할 지경”이라며 “‘워라밸’이란 말은 사치로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2012년 조성된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의 슬로건이다. 그 당시엔 독특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많은 사람의 로망이 되고 있다. 여전히 도전적인 메시지로 보이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리라. 시간과 돈의 반비례 법칙 속에서 ‘적당히’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 주 52시간 근무 시대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김경희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