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르포 - 학교 밖의 선생님 <5> 파주 탄현중학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경기도 파주시 검산초등학교 발명반 김도형 교사가 이 학교 발명교실에서 탄현중 학생들에게 교각의 역학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파주=김상선 기자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축현리에 위치한 탄현중학교. 서부 지역 최북단 중학교라는 교장의 설명처럼 외진 곳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학교다. 교사 14명에 전교생 281명의 이 학교는 그러나 '작지만 배움이 있는 큰 학교' '학생들이 돌아오는 학교'다.

2004년 9월부터 인근 지역의 시설과 인사를 '교육장'과 '선생님'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학생 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선 20대 대학 휴학생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선생님'이다. 심지어 이웃 초등학교 교사들도 탄현중 학생의 발명 수업 선생님으로 나섰다.

21일 오후 탄현중 교문. 6교시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뛰어나온 1학년 학생 20명이 학교 통학버스에 올랐다. 3㎞ 남짓 떨어진 검산초등학교로 발명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검산초등학교 '발명 교실' 담당인 강기룡.김도형 교사가 학생들을 맞았다.

"오늘은 카트라이더 같은 게임과 관련한 수학 공부를 하겠습니다. " 김 교사가 이날 선택한 수업 주제는 사칙연산을 이용한 '게임 만들기'다. 전예승(13)양은 "지난주엔 축구공의 오각형과 육각형의 원리를 알아보는 실험을 하고 오늘은 평소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공부해 재미있다"며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하는 수업이지만 재미있고 깊이도 있다"고 말했다.

검산초등학교 발명교실 교사들이 탄현중 학생을 가르치게 된 것은 지난해 탄현중 임봉규 교장이 '공부 동냥'을 부탁한 데 따른 것이다. 강 교사는 정부가 지정한 발명분야 '신지식인'이고, 김 교사는 아주대 과학영재교육원 담임교사로 활동하는 이 분야 베테랑 교사다. 강 교사는 "전문지식을 활용해 이웃 중학교 학생의 발명 창의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학교 인근 파주국궁장. 탄현중 1, 2학년 학생 10여 명이 '전통 활시위 당기기' 기초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유명희(71) 경기도 국궁(國弓)협회 회장과 박명래 사범(67.국궁 공인4단) 등 지역 할아버지들이다. 유 회장이 탄현중에서 특기적성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주 2회 무료지도를 제안하고 나섰다.

유 회장은 "궁도를 하게 되면 마음이 정화되고 자신에게 엄격해져 정서교육에 좋다"고 말했다. 이우람(1학년)군은 "동네 할아버지에게 활쏘기를 배우니 마음이 푸근하고 좋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학교 강당은 15명의 학생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로 가득 찼다. 차혁주(22) 선생님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추임새를 넣어가며 지도에 한창이다. 차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공익요원으로 복무 중이지만 매주 한 번 학교를 찾아와 학생들과 어울린다. 대학 그룹사운드 멤버로 활동했다는 얘길 듣고 임 교장이 찾아와 지도를 부탁한 게 인연이 됐다. 보컬을 맡고 있는 한이슬(3학년)양은 "학교 선생님과 달리 '어린' 선생님에게서 허물없이 배울 수 있어 좋다"며 "학교생활이 재미있어지니까 학교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탄현중이 지역인사를 활용한 특기적성 교육 강화에 나선 것은 '학교 살리기' 차원에서다. 인근 일산신도시 등으로 학생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교육경쟁력 확보가 절실했던 것. 성과는 컸다. 2004년 191명이던 전교생이 올해는 281명으로 늘어났다. 임 교장은 "인근 헤이리예술마을에 거주하는 음악가.조각가.화가들도 우리 학교 '선생님'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파주=김남중 기자<njki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