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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가 왔어요"|소 선수단 통역 서동우씨 인천서 숙부 상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작은아버님, 제가 동우입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대신해 45년만에 제가 왔습니다.』서울올림픽이 반세기간의 이산가족 상봉의 다리를 놓았다.
4일 오후 미하일 숄로호프호의 인천항 입항 후 이 배에 승선한 한국계 소련인 서동우씨 (36·사할린교포·현재 블라디보스토크거주)가 숙부·고모 등과 대면하는 순간 서씨는 도로 위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흐느끼는 조카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 뒤 부둥켜안고 함께 울음을 터뜨린 서재원씨(60·충남 논산군 채운면 우기리)와 고모·사촌형제들.
혈육이 갈라져야 했던 아픔만큼 만남의 기쁨 또한 컸다.
단 한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음에도 끈끈한 피의 흐름으로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이날 상봉에는 서씨의 작은아버지 외에 셋째·네째 고모인 서정원(50) 심원(47)씨와 사촌형제 2명이 함께 했다.
이들이 소련선수단 통역으로 모국을 찾은 서씨를 만나게 된 것은 입항 하루전인 3일 신문보도를 통해 그의 한국입국 소식을 알았기 때문.
서씨는 부둣가에 마련된 자리에 앉자마자 품안에서 빛 바랜 가족사진 5∼6장을 꺼내들곤 『돌아가진 큰아버님과 아버님이 고국친척들께 전해달라던 사진들』이라며 사할린서 찍은 가족사진들을 일일이 설명했다.
서씨가족과 친지들이 이별한 것은 일체말기인 지난43년.
충남 논산군 채운면 우기리 고향에서 서인원(사망) 길순(68·여) 재득(66) 명원·재원· 경순(57) 두원(사망) 정원·심원 등 5남4녀 중 3남으로 태어난 서씨의 아버지 서명원씨(사망)는 일제말기 강제 징용돼 사할린으로 끌려간 것 .
이미 서씨의 큰아버지 인원씨, 큰 고모 길순씨의 남편 최경택씨 등 3명이 강제징용에 끌려간 뒤였었다.
이들 4명은 해방된 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채 사할린에 머물게 됐으며 큰아버지 가족 5남매, 길순씨 가족, 명원씨 가족이 차례로 남편을 찾아 사할린으로 이주해 코르사크부에 정착하며 마을을 이뤄 살아오고 있다.
국내가족들이 사할린거주가족의 안부를 알게된 것은 지난 53년. 동우씨의 아버지인 명원씨로부터 사진이 동봉된 서신이 충남논산 서씨 고향에 날아들었다.
경로가 불분명한 가운데 5년 전에 16절지 모조지에 쓴 이 편지는 사할린거주 가족 30명을 찍은 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이후로도 간간이 사할린에서 가족안부를 알리는 편지가 도착했으며 5년 전인 지난 83년에는 동우씨의 고모부인 최경택씨(70)로부터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가 일본을 통해 국내 작은아버지 재원씨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지난 86년 3월에는 재원씨가 KBS사회교육방송의 사할린동포에게 보내는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국내가족 소식과 함께 사할린 친지들의 안부를 묻기도 했으나 답신은 오지 않았다.
동우씨가 인천에 입항하는 4일 국내가족들은 머나먼 이국 사할린으로부터 찾아온 조카를 맞을 꿈에 3일 밤을 흥분으로 지새웠다.<인천=김정배·김기평 김종혁·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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