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외딴 산 등불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외딴 산 등불 하나'-손택수(1970~ )

저 깊은 산속에 누가 혼자 들었나

밤이면 어김없이 불이 켜진다

불을 켜고 잠들지 못하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누군가의 불빛 때문에 눈을 뜨고

누군가의 불빛 때문에 외눈으로

하염없이 글썽이는 산

그 옆에 가만히 등불 하나를 내걸고

감고 있는 산의 한쪽 눈을 마저 떠주고 싶다



도시의 불빛은 너무 많은 데다, 또 저마다 극성을 부려 그렇지 않지만, 외딴 산골의 불빛은 선명한 신호다. 반가운 인기척이다. 한밤중 산속의 불빛은 이야기를 빚어내는 불씨다. 그 불빛이 하나일 때, 그 불빛이 멀어서 가물거릴 때 이야기는 훨씬 풍성해진다. 등불이 하나 더 걸려 외눈박이 산이 두 눈을 뜬다면, 산 아래, 불면에 시달리는 수많은 외짝, 외톨이들도 등불 하나씩 들고 단잠 속으로 걸어 들어갈 터. 단꿈을 꿀 터.

<이문재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