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국제 경쟁력 까먹는 부산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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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정부의 '동북아 허브'구상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잉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부산항이 화물연대의 거듭된 운송거부와 투자 소홀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동북아 물류의 중심기지는커녕 부산이란 도시 자체가 일개 변방의 어촌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크다.

부산은 사실 국내 화물 수출입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수출입 화물 중 99%가 항만을 통해 수송되고 있는데 부산항이 이 가운데 80%를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산항이 국제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 위치한 세계 5대 컨테이너항 중 이미 상하이(上海)항에 3위 자리를 넘겨주었고 선전(深)항에조차 밀리고 있다.

부산항이 국제 경쟁력을 잃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천혜의 조건만 믿고 시설투자를 하지 않은 때문이다. 국가경제 운용의 우선순위로 볼 때 항만은 고속철도보다 먼저다.

수출입 물류를 육로로 이동하기 전 먼저 항만 시설부터 갖추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항만이 벌어다 주는 수입도 만만치 않다. 대형 컨테이너 선박 한척이 항만에 하루 머물면 9억원의 수입이 난다.

게다가 머무르는 동안 선박에 기름도 넣고 수리도 하고 이것저것 선박 용품도 구입하게 되면 파생효과도 생긴다. 환적화물 처리 수입만 연간 8천억원에 이르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다.

그럼에도 항만시설 확충에 소홀하다 보니 선박들이 접안할 곳이 없어 외항에 머물러야 하고 제때에 선적과 하역을 못할 수밖에 없게 됐다.

더욱이 변변한 배후도로 하나 없어 부산 시민들은 도심을 통과하는 대형 컨테이너 트럭 옆을 떨면서 지나 다녀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올해 1월에서야 신선대 부두와 경부고속도로를 바로 잇는 광안대로가 개통됐을 뿐이다.

둘째, 동북아 물류의 흐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점이다. 홍콩.싱가포르.상하이.부산.선전 중 부산항이 3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환적화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북미와 유럽으로 가는 직항로가 늘어나고 있고, 상하이항은 2011년까지 규모를 현재의 네배로 확장하는 공사를 단계적으로 하고 있다.

상하이항의 시설이 확충될수록 부산으로 오던 환적물량은 줄어들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부산 신항을 완공해도 화물이 없어 개점휴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칭다오(靑島)와 톈진(天津), 그리고 다롄(大連)항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외국 선사들을 유인하고 있고, 요코하마(橫濱)항도 질 높은 서비스를 내세우며 유치에 적극적이다.

화물연대의 잇따른 파업 이후 실제로 2개 선사가 환적화물의 일부를 이 항구들로 옮겨갔다. 이런 변화는 이미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경쟁항들이 국가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항만을 키우는 동안 부산항은 하품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산항의 경쟁력을 회복할 방안이 없을까. 세계 1위의 항만인 홍콩은 자유무역지대이고 비관세지역이란 특수한 조건이 있다. 하지만 홍콩항이 세계 최고가 된 이유는 자동화율이 80%나 되는 첨단 부두시설과 항만.도시가 함께 발전하면서 구축된 금융과 무역 인프라 때문이다.

오랜 기간 선사(船社)들과 쌓아온 신뢰도 깊고 항만 브랜드의 가치도 높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 입항료 면제 등의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항 역시 이같은 끊임없는 정부 투자와 관리가 있어야 한다.

'동북아 허브항'이란 목표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부산이 어촌으로 전락하지도 않게 되고 나라도 산다. 항만이 쇠하면 미래도 없다.

조광수 영산대 교수.아시아비즈니스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