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실험연극제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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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큰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게 될 줄은…"

지난 11일 제15회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에서 '카르마(Karma:'인과응보.인연'이라는 뜻의 힌두어)'로 최고 영예인 작품상(대상)을 수상한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35) 대표는 감격에 어려 이렇게 말했다.

이곳 시간 이날 오후 8시 중동 내 최대 문화단지인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폐막식 앙코르공연에서는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특히 공연 하루 전에 이곳에 도착한 단원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준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을 이은 양대표는 "출국 전날까지도 단원들은 한국에서 '카르마'가 아닌 '한 여름 밤의 꿈'을 공연하며 틈틈이 성격이 다른 이 작품을 연습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덧붙였다.

'카르마'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탄생.성장.결혼.죽음을 끝없는 순환의 과정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대사보다는 몸짓과 표정 등 이미지로 주제를 전달하는 실험연극이다.

양대표는 "이 네가지 과정이 논리보다는 우연한 사건으로 벌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사와 이미지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선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고 작품의 의도를 설명했다.

매년 9월 1일부터 11일까지 카이로 곳곳의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이 연극제는 제 3세계 실험연극제로 그 위상을 굳혔다.

지금까지 이 행사를 찾은 연극인 중에는 피터 브룩.이오네스코.아라발.앨런 스튜어트.로버트 브루스틴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포함돼 있을 정도다. 올 행사에는 46개국 80개팀이 참가해 새로운 연극언어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발상을 선보였다.

'카르마'의 경우 한국의 전통 혼례.장례.놀이 등을 소재로 우리 고유의 이미지를 부각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흰 천과 대나무를 사용해 동양적인 느낌을 강조한 무대와 잘 훈련된 배우들의 신체 연기가 두드러져 작품상 외에 감독.여우주연.미술상에도 노미네이트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양대표는 "미국.러시아 등과 공연 계약을 협의 중이다. 곧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 같다. 세계적인 공연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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