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문화cafe] 부귀영화의 상징 모란꽃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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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 노래한 시인은 김영랑(1903~50)이다. 시인에게 모란이 지는 일은 곧 한 해가 가버리고 마는 것과 같다. 영랑뿐이랴. 박재삼 시인(1933~97)은 '모란 송가'에서 "마치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든든하고 실한 모란이/ 온 세상의 기운을/ 한군데로 한군데로만 집중시켜/ 그 모습 환하게 피어오르나니"라 읊었다. 모란이 얼마나 좋았으면 "꽃을 처음으로 꽃같이 보는/ 이 눈부신 한나절"이라 칭송했을까.

다투어 피는 봄꽃 가운데 모란은 '꽃들의 왕'이라 불릴 만큼 사랑받았다.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성정을 지녀 미술품이나 생활용품의 소재로 즐겨 쓰였다. 모란 문양은 부귀영화의 상징이어서 일종의 복을 비는 기능도 겸했다. 그림과 도자기, 목가구와 민속품 등에 모란을 장식하면 부자가 되고 벼슬도 높아지며 집안이 일어서리라고 우리 조상은 믿었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란전'은 이렇듯 우리 조상의 소망을 담은 꽃 모란의 향기를 전통 미술 속에서 찾아보는 소장품 테마전이다. 민화와 도자기, 가구와 자수 등에 묘사된 모란의 화려한 자태가 미술관 앞 전통 정원 '희원'에 핀 꽃을 능가한다.

열 폭 병풍에 큼직큼직하게 그려진 모란을 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고 배까지 부르다. 나비와 어울린 화사한 모란, 괴석과 함께해 장수를 비는 모란, 박쥐 문양을 수놓아 복까지 바라는 모란 등 자연의 에너지를 삶으로 끌어들인 옛 어른의 마음과 지혜가 새삼 살뜰하게 느껴진다. 5월이 되면 미술관 앞에 심은 모란까지 피어나 안팎으로 관람객을 모란 세상으로 데려간다.

23일까지 '호암미술관 벚꽃축제'가 곁들여져 오후 8시까지 연장 전시한다. 두 겹 꽃놀이인 셈이다. 매표 마감인 오후 5시 이후에는 입장료(어른 4000원, 학생 3000원)를 50% 할인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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