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 없앤 뒤 '대안' 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애는 대신, 이를 대체할 방안으로 사업지주회사 활성화, 순환출자 규제, 이중대표소송제, 일본식 업종 제한 등 네 가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총제는 자산이 6조원을 넘는 그룹(기업집단)의 소속회사는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기업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기업 투자를 저해하고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대응할 수 없도록 한다는 비판을 받고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이 참석한 출총제 관련 간담회에 네 가지 대안을 보고했다.

공정위가 제시한 첫째 방안은 '사업지주회사 의제(擬制)' 제도다. 특정 그룹이 핵심 계열사 한 곳을 지정하면 이를 '자체 사업을 하고 있는 지주회사'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는 주력 업종을 가진 그룹들이 보다 쉽게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현재 지주회사는 거느리고 있는 자회사의 자산이 전체 자산의 50%를 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체 사업 분야가 큰 곳은 지주회사가 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둘째는 A기업→B기업→C기업→A기업식으로 순환출자하는 것을 규제하고, 순환출자한 지분은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한 순환출자규제법 제정이 거론되고 있다. 이중대표소송을 인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중대표소송은 비상장 자회사나 소속회사가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면 상장된 모기업의 주주들이 자회사를 대신해 소송을 내는 것이다.

일본처럼 대규모 그룹에 대해서는 업종 수를 제한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일본은 출총제와 같은 '대규모 회사의 주식 보유 총액 제한제도'를 2002년 폐지하면서 대안을 마련했다. 자산 15조 엔을 넘는 그룹은 자산 3000억 엔을 넘는 회사를 5개 이상 사업분야에서 거느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순환출자규제, 이중대표소송 등은 기존 출총제보다 기업에 더 큰 부담이 되는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대안 마련 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

권오승(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취임 이후 첫 정례브리핑을 하고 "대기업의 순환출자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면 출총제를 폐지할 수 있다"며 "순조롭게 진행되면 새로운 제도는 2008년 4월부터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순환출자와 대기업 총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쳤다. 그는 "한국의 재벌과 일본의 재벌이 다른 것은 한국에는 총수가 있고 일본에는 없다는 것"이라며 "이런 체제에서 사외이사제도 등 외부 견제제도만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출총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 총수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분들이 뾰족한 대안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안이 마련되면 설득하기 위해 만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자동차가 1조원의 사회공헌을 하기로 발표한 것과 관련 "문제가 있으면 시정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해야지 돈을 내고 무마하려는 것은 전근대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영욱.김원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