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 40년 차분히 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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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올림픽 문화예술 축전의 첫 미술 행사로 열린「국제 현대 회화전」과「한국 현대미술전」은 과천의 국립 현대미술관 전체를 메운 보기 드문 맘모스 전시일 뿐 아니라 명실공히 올림픽이라는 열기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고조시킨 행사로 돋보였다.
국제 현대 회화전은 세계 64개국에서 1백60명의 화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국제전이라는 데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러면서도 여타의 국제전과는 그 규모나 성격이 다른 다분히 축제 적인 행사라는 점에서 일반 국제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일반 국제전이 갖는 새로운 방법의 제시와 뜨거운 실험의 마당이기보다는 이미 틀 잡힌 양식과 인정된 방법,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권위가 이 전시장이 보여주는 하나의 색채라면 색채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무엇보다도 전후 40년의 미술을 폭넓게 관망할 수 있는 작가들의 초대 선정이라는 점에서 좀처럼 기회가 없었던 우리에게는 아주 귀중한 사적인 전개과정의 볼거리를 제공해 준 셈이다.
전후 50년대의 추상표현주의의 중심작가들에서부터 80년대 새로운 이미지의 작가들까지 폭넓게 수용된 점에서 전후 현대미술의 축약 같은 인상을 주고있기 때문이다.
예컨대「아펠」(네덜란드)·「마티유」(프랑스)「타피에스」(스페인)·「마더웰」(미국) 등의 추상표현에서 색면 추상·옵티컬 경향의「놀란드」(미국)·「리버스」(미국)·「르·팍」(아르헨티나) 그리고 최근 80년대의 신 표현주의 경향의「킬커비」(덴마크) ·「바세리츠」(서독)·「펭크」(서독)·「루펠츠」(서독)·「임멘도르프」(서독) 등 전후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간대가 국가별이 아닌 경향별의 진열 방법에 의해 잘 정비되어 있다.
비교적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이상의 서구나 미국의 미술에 비해 동구의 미술은 극히 생소한 편이다. 더욱이 다른 체제의 미술이라는 점에서 생소함과 더불어 호기심을 자극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레 관념하고 있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서구나 다른 지역의 미술가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은 자유분방한 표현세계와 얼러진 의식은 예술이 정책의 시녀가 아니라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우리의 미술도 이들 해외 미술과 한자리에 놓고 보니 조금도 꿀리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다양성이 결여해 있다 든가 활짝 편 의식의 개방이 빈약하다 든가 하는 어두운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전은 애초의 기획이 무산됨으로써 규모나 성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 지나치게 많은 작가들의 참여로 작품의 규격이 제한되고 있어 현대 미술 관전 시장 스케일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구차함을 드러낸 점, 작품 수준의 심한 격차, 현대전으로서는 걸맞지 않는 경향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모처럼의 기대가 사라져 버린 점은 안타깝기만 하다.
오광수 <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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