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집권 11년 독재에 후계자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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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아·울-하크」 파키스탄 대통령은 집권 11년 동안 반소·친 서방 군사독재자로 알려져 왔다.
1977년 파키스탄 총선 후 3백 50여명의 희생을 낸 정치소요 와중에서 쿠데타로 집권, 회교공화국의 기초를 강화해온 「지아」는 그의 사망으로 마땅한 후계자가 물망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독주해 왔다.
그는 쿠데타 2년 후인 1979년 자신을 파격적으로 군 참모총장에 기용했던 「부토」 전 대통령을 처형,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아」는 소련의 파키스탄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 내 3백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지원하고 이들 난민을 바탕으로 한 반 카불게릴라를 뒷받침해왔다.
「지아」는 현재 인도에 귀속된 편자브의 중산층가정에서 1924년 출생, 회교교육을 받았으며 인도 군에서도 복무한 적이 있다. 그가 파키스탄 군에 임대한 것은 2년 복무후 정부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였으나 입대 후 지금까지 군인으로 성장해왔다.
현재까지 군 참모총장을 겸임했던 「지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군복과 파키스탄 정통의상을 즐겨 입었으며 영어가 일상용어에 가까운 파키스탄에서 첫 국어 우르두어를 사용하는 최고 정치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는 집권 후 회교율법을 강화, 빈민층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그의 종교적 열정은 「주네조」 전 수상을 회교개혁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격 해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신조는 특이해 「정당은 분열의 근원」이라는 이유로 야당해산 등 탄압을 계속해 왔으며 2차례의 총선 약속을 어기고 문맹률이 높은 파키스탄에서 각 정당들의 상징기호 사용을 금지하는 등 야당 견제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왔다.
그는 자신의 대통령직을 「의무」가 아닌 「운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작은 키에 단단한 몸매인 「지아」는 수염을 항상 잘 손질하고 손톱마다 매니큐어를 칠할 뿐 아니라 가운데 가르마를 탄 멋쟁이이기도 했다.

<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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