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학생회담 왜 좌절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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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축의 광복절은 최루탄과 투석으로 얼룩졌다. 대학생들이 추진해온 남북학생회담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또 한번 유산됐다. 다수가 다치고 연행됐다. 8·15가 갖는 「광복」과 「분단」의 2중성을 드러낸 극적인 현상이었다.
대학생들은「6·10남북학생회담」에 이어 8·15회담이 다시 실패한 배경을 겸허하게 분석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는 어떤 행동도 국민적지지 위에서 취해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국민들은 학생들이 지금 그런 식으로 북한학생들과 만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시민들의 반대시위로 표출된바 있다. 통일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아직 명확한 국민적 합의가 성립돼 있지도 않다. 이런 마당에 아직 미숙한 학생들이 자의로 이쪽을 대표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둘째는 대북한 행동은 국가질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정부권위를 무시하고 평양 측 방식에 맞춰 판문점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그것은 혁명적 행동이다. 이쪽 체제에서 이탈해서 저쪽방식에 영합하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중대한 착각이다.
셋째는 순수성의 회복이다. 학생들이 발표한 유인물들은 이쪽 질서와 체제의 파괴를 목표로 통일운동을 펴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의사표현과 행동양식이 저쪽과 너무나 유사하다. 정부가 남북교류를 제의해 놓고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고있는 이때 굳이 학생들이 정부를 제쳐놓고 저쪽과 만나겠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온 세계와 국민의 관심 속에 모든 국력을 기울여 한달 앞의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은 통일완성의 주체로 나설 것이 아니라 통일운동의 선도자로 그쳐야 한다. 통일에 대해 학생들이 할 일은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일으켜 통일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통일정책에 영향을 미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이상주의적 민족주의자「마치니」의 영향을 받은「청년이탈리아 당」에 의해 시작되고 주도됐지만 통일의 완수는 결국 현실주의 정치인인 「카부르」와 군사지도자 「가리발디」에 의해 이뤄졌다는 교훈을 새겨야 한다.
정부가 학생들의 행동을 다시 경찰력으로 누르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나 힘으로만 누를 수는 없다.「창구의 일원화」를 내건 정부는 그 창구를 넓혀야 한다. 학생들의 움직임을 문제제기로 보고 그것을 용기 있게 수용하여 정책화하면 학생들에 반대하던 국민들도 그 정책을 지지하고 나설 것이다.
일부 주동 학생들이 어떤 의도를 감추고 있다해도 대다수 대학생들이 지니고 있는 통일에의 꿈과 열망은 지켜져야 한다. 원래 민족의 꿈과 이상은 청년학생들이 대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서 학생회담을 적극적으로 주선할 준비를 갖춰야한다. 학생들도 정부의 협력 속에서 학생신분에 맞는 분야에 한정하여 북한과 접촉할 태세를 갖춰야한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논의의 개방화」,「정책의 일원화」,「접촉의 전문화」, 이 세 가지 원칙은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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