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공권력 무시도 韓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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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에선 아직도 관(官)이 민(民)을 압도한다. 좁은 도로에서 차량들이 얽혀 있다 공안(경찰)차량이 출동하면 금세 길이 뚫리고, 공안원이 뜨면 말다툼하다가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그런 중국 사회에도 공권력 경시 풍조가 머리를 들고 있다.

추석 연휴인 지난 12일 새벽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의 바이룽(白龍)도로에선 트럭 기사들이 푸저우시 도로국장을 때려 숨지게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과적한 대형 화물트럭이 도로 입구에 들어섰다가 도로국 직원들의 제지를 받으면서 일어났다. 트럭 운전기사는 화물 중량 검사를 거부했고, 도로국 직원들은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려 했다. 그 과정에서 운전기사의 이가 부러지자 운전기사.조수들은 흉기를 들었다.

더 큰 폭력 사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본 다른 트럭에서 4백여명이 몰려나와 순찰차들을 뒤엎고, 긴급 출동한 경찰까지 폭행한 것이다. 도로국장이 현장에서 숨지고 6명의 도로국 직원과 경찰이 부상했다.

푸저우 도로국은 "5t 트럭이 50t의 화물을 싣고 달리다 사고가 빈발하고 도로 파괴가 심해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거꾸로 트럭 운전기사들은 "화물 운임 경쟁으로 갈수록 생활이 고달프다"며 도로국에 대한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

더 이상 '관'의 한마디에 '민'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던 시대는 흘러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해 중국 당국은 예민하다. 중국 정부는 요즘 한국의 TV 드라마를 까다롭게 심사해 방영을 허락한다고 한다. 폭력적인 장면이 지나치게 많거나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공권력 경시 풍조는 한국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올 판이다.

그러나 중국의 공권력이 도전받는 진짜 이유로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자라고 있는 부정부패와 빈부 격차를 꼽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공권력 도전 사태는 광산 사고와 도심 재개발로 피해를 보거나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는 농촌에서 더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공권력을 사사로이 휘두른다는 불만이야말로 민초(民草)들을 가장 자극하는 휘발성 물질인 것은 한국이나 중국 모두 마찬가지 같다.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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