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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의 한국학교 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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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러한 의문을 풀어 줄 대답은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옛 소련권 내에 존재하는 아시아 소수 민족을 연구하면서 이들과 한반도의 교류사를 연구하는 연구가들은 이들 소수민족의 역사와 언어 속에서 해답을 발견하고자 한다.

최근엔 시베리아 소수민족인 나나이족의 말 '아리랑'(어서 오세요 등 환영의 뜻)과 '스리랑'(잘 가세요 등 환송의 뜻)의 의미가 혹시 우리 말의 어원이 아닐까 하는 주장도 나온다. 사하족의 단어에 등장하는 우랑카이(영웅.무사)가 북방 오랑캐의 어원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과 발견들이 학술적으로 뒷받침되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이상 이러한 민속적.고고학적.인종적 유사성을 연구해 온 민간인들의 노력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한국외대 교수인 강덕수씨도 그들 중 하나다. 강 교수는 우리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사하 한국학교' 고문이자 야쿠트 대학 한국학과 설립자다. 사하는 북극해와 접한, 일 년에 계절이라곤 짧은 여름과 긴 겨울 둘밖에 없는 곳이다. 그가 이곳을 주목한 것은 사하족이 부랴트족과 함께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발원해 동북쪽으로 이동한 고대 아시아 유목민 중 하나로 동북아 고대 문명 교류사의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1993년 이후 이 지역을 오가며 한국과의 문화사적 교류를 복원하고, 21세기 이후 동북아의 문화 공동체의 외연(外延)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야쿠트 정부도 강 교수의 이런 노력에 감동받아 한국학교 부지를 내줬고 그는 사재와 후원금을 가지고 여기에 한국학교를 만들었다. 한국어 교사는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학생 등이 매년 자원봉사를 통해 1년 이상씩 돌아가면서 담당해 왔다. PTP(국제 피플 투 피플협회) 같은 한국학교 후원자도 몇몇 나타났다.

생김새가 똑같은 한국인과 한국에 대해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최근엔 사하 한국학교 졸업생들 중 한국에 연수와 박사 과정을 밟는 사람들도 생겼다.

최근 이런 사하공화국에 외국인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금과 다이아몬드에 천연가스와 석유.유연탄이 풍부한 사하 지역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진 때문이다. 이미 중국은 물량으로 사하 경제를 장악해 가고 있고 일본도 국가 차원의 진출을 늘린다.

그런데 이들이 제일 놀라는 것은 이러한 얼음 땅에 벌써 13년 이상이나 된 한국학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론 부러워하고 한편으론 한국인의 저력에 놀라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강 교수는 밤잠을 못 자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사하 한국학교와 야쿠트 대학 내 한국학과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등 일부 나라 사람은 한국학과를 단독으로 하지 말고 동양학교로 하면 자신들이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식의 제안을 하고 있다. 문화원.정보센터 등의 건립 약속도 한다.

강 교수는 일부 후원자의 도움으로만 버티기엔 한계가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한민족이 위대한 것은 독자적 언어가 있고 물질만이 아닌 문화를 숭상하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하 학생들에게 강조해 왔던 그다. 그런 그는 한국이 영토는 작지만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문화의 품격이 있고, 평화지향적이어서 매력적이라던 사하 학생들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강덕수 개인이 13년을 지켜 온 사하 한국학교. 중.일의 경제 공세에 밀려 위축되고 존폐 기로에 빠진 이 학교를 지켜 줄 한국민 후원자들, 매력적인 한국을 지켜낼 그런 후원자들을 강 교수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