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재계엔 봄이 없다…환율·유가·검찰수사…실적 부진 현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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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봄이 왔건만 봄이 아니다(春來不似春)-. 요즘 재계를 짓누르는 먹구름이 짙어지기만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수사의 종착점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환율급락과 유가급등으로 실적 부진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연초 경기회복의 기대 속에 '희망'을 이야기했던 기업 총수들의 입에서는 요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집안 단속 시작한 총수들=갈수록 나빠져 가는 경영 환경에 그룹 총수들이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나섰다. 최근 발목 부상에서 회복되면서 활동을 재개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불러 경영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이 회장은 "외부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경영진이 심기일전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주변에서는 내년 초 정기 인사에서 사장단의 대폭 물갈이 인사를 점치고 있다. 그 동안 실적 호조와 여러 현안 때문에 현상 유지에 치중했으나 내년엔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본무 LG회장은 지난달 말 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 참가해 "연구.개발 활동에 고객을 향한 혼을 담아 줄 것"을 주문했다. 원칙 재점검을 통한 위기 극복을 강조한 것이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임직원에게 "전 세계 철강사가 대형화.통합화의 변화에 휩싸여 있지만 포스코 내부에는 위기 인식이 부족하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위기 관리 체계 점검=현대차 수사가 확대되고 신세계와 한무쇼핑(현대백화점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되자 각 기업은 정보망을 총동원해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2세 승계 등 민감한 현안을 갖고 있는 기업은 불똥이 튀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삼성은 12일 열린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각 계열사로부터 홍보와 정보수집 강화 방안을 보고받았다. 이를 토대로 그룹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포괄적 전략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기존 ER팀(외부관계 담당팀)을 최근 대외협력실로 격상했다. 단순한 대외 업무에서 벗어나 각종 정보 수집과 분석까지 담당할 예정이다. 이밖에 현대차 수사와 관련해 간접적으로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D.H 등 중견그룹들도 안테나를 한껏 뽑아 놓고 있다.

◆뭘 내놓나 고민=다음달 24일 예정된 청와대 대.중소기업 상생회의를 앞두고 재계 분위기는 묘하다. 대통령과 만남 전에 불투명한 상황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과 함께 뭔가 그럴싸한 카드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는 것. 8000억원 헌납과 법률봉사단 운영, 자원봉사센터 개설 등 다양한 조치를 잇달아 내놓은 삼성은 상대적으로 느긋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다소 어정쩡한 자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회공헌은 좋지만, 뭔가 압박에 못 이겨 자꾸 내놓는 듯한 모습이 국민에게 과연 순수하게 비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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