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장정」이제부터 걸음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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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인·르윈」 대통령의 사퇴로 민주화 장정에 오른 미얀마는 일차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사임이 곧바로 시민들이 요구해온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킨 것은 아니다.
시위군중들이 10가지 요구를 해온 내용 중「르윈」의 사임만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구속된 반정부 인사라든가 학생들의 석방발표가 없고 정체개혁을 위한 국민투표에 관해 언급이 없는 것 등이 그러한 예다.
19일 미얀마 집권당의 특별회의가 소집된다는 발표로 미뤄 후속조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아직도 막후에서 「네윈」이 실권을 잡고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체제를 완전히 바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26년간 「버마식 사회주의」를 펴며「미얀마의 정신적 지주」로 자처해온「네윈」전 대통령은 지난달 사임하면서 민심수습의 「기만적 미봉책」으로 그의 추종자인 「르윈」을 전면에 부상시켰고 막후 실력자로서의 영향력행사를 구상해왔다.
결국 이 같은「책략」은 기대에 부풀었던 국민들을 실망시켰고 최근「아웅·지」전 장군을 포함한 반정부인사구속은 목숨을 건 민중항쟁을 유발시켰다.
학생들이 그 동안 내건 10개 요구사항은 ▲「르윈」축출 ▲집권 미얀마사회주의 계획당 해체 ▲임시정부구성 ▲다당제의 민주제도 도입 ▲정치범 석방 ▲전국학생연합조직 ▲물가안정 ▲군·민 협동 ▲내전종식 ▲국가적 화해 및 단결 등이다.
미얀마 지도부는 그 동안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 경제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경제개혁정책을 필 것을 시사했으나 「르윈」의 사임을 결정하는 철야 비상회의에서도 「툰·틴」수상은 『경제개혁에는 뜻을 두고 있으나 다당제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혀 철권통치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시사함으로써 「르윈」의 사임이후도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있다.
미얀마 사회주의계획당 중앙위원회는 7일 후인 오는 19일 4차 인민의회의 비상회의를 소집, 수습 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는데 서방소식통들은 「르윈」의 축출에 사기가 북돋워진 시위군중들이 해결되지 않은 나머지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을 계속할 것이며 현재 막후에서 정국을 조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네윈」등 강경파들이 일시적 무마책을 내놓으면 결국 사태는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이때를 틈타 미얀마정국 불안의 큰 위협요소였던 소수민족 게릴라들이 준동 태세를 갖추고 있어 더욱 심각한 유혈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미얀마 국민들에게 애증의 관계인「네윈」이 앞으로 사태수습을 위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불확실하나 우선은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온건·개혁파인물이 집권한 후 구속된 반정부인사와 학생 등을 석방하고 이번 시위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그후, 국민적 화해와 단합의 바탕 위에 직면한 경제파탄위기를 치유할 개혁안을 실시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26년간 미얀마를 사회주의의 철권통치하에 묶어놓았던 강경파들이 누렸던 기득권을 얼마나 쉽게 양보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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