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문연 일 건설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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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경=최철주 특파원】11일 일본정부가 한국의 삼성종합건설·대우·삼환기업·현대 건설 등 4개 기업에 일본 건설 시장 참여를 인정하는 특인(건설대신의 특별인정) 을 내려 아시아국가기업에 최초의 시장개방 조치를 취했다.
한국건설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의 건설시장은 철옹성과 같이 폐쇄적인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은 미·유럽계 기업들보다 한국의 진출이 그래도 쉬운 편이며 시장규모가 엄청난데 매력이 있다.
오는 2000년대까지 15년간 일본의 공공사업 투자액만도 3조3천억 달러에 이르며 민간부문을 포함한 연간 건설규모도 4천억 달러를 넘는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특인 을 받았으나 본격적인 공사수주를 위해서는 동경도 등 지방자치단체장외 건설업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절차를 남겨 두고 있다.
지금까지 외자 계 기업으로서 일본의 건설업 면허를 취득한 회사는 미국의 벡텔사 뿐이다.
일본정부가 자국기업의 압력을 물리치고 한국기업의 대일 진출을 허락한 것은 세계최대의 채권국으로서 건설시장 문을 아예 닫아 두고 있다는 선진국들의 맹렬한 비판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기업에 대한 특인 조치의 의미를 강조해 미·유럽과의 무역마찰이 다소나마 완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4개 건설기업들이 약 1개월 후에 공식적인 사업면허를 받는다 하더라도 실제 공사 수주에 이르기까지 뛰어 넘어야 할 난국이 허다하다.
한국이 한때 중동에서 호황을 누렸던 것은 저임노동인력과 국산장비사용, 까다롭지 않은 안전관리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건설조건은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엄격하다.
우선 첫째로 한국의 건설인력을 일본으로 송출하는데는 외국인의 취업을 제한하는 일본의 관계법에 걸려 현재로서는 이 법의 개 정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일본노동성은 한국 등 외국기능인력의 일본취업을 허용해야 한다는 일부 업계의 요청에 따라 제한적으로 노동비자를 발급하되 ▲일정기간 취업 후 출국을 의무화하고 ▲단신 입국조건으로 허용하는 방침도 검토하고 있다.
둘째로 한국산 건설자재와 장비를 사용하는 문제다. 국산철근과 시멘트 등은 품질이 상당히 향상되었으나 일본의 공사발주자들이 보다 까다로운 규격의 제품 사용을 요구해 결국일제투입을 강요할 것이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의 건설공법이나 사용되는 자재를 생산하는 문제는 한국의 관련기업들이 새로 강구해야 할 사항들이다.
셋째, 불도저 등 한국산 장비는 일본의 건설장비 제조업체들과 기술제휴로 만들어진 것이 적지 않아 일본으로 가져올 경우 당초의 계약조건과 충돌하는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일본식 안전관리문제를 완전히 터득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산적해 있으나 현대와 대우 등은 중동에서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돌격 적이고도 대담한 방식으로 일본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정하기 위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한국기업에 대한 시장개방을 내세워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조치를 한국정부에 요구할 것이며 장차 한국에서 설계·엔지니어링 부문에 걸쳐 일본세가 더욱 드세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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