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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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세의 유럽 지도를 보면 영국은 왼쪽 끝에 밀린 변방 섬으로 그려져 있다. 그 시대를 산 유럽인들에게 세계의 중심은 지중해였다. 아시아와 중동의 상품들이 모두 바다를 따라 이탈리아의 항구로 몰려갔고 거기서 유럽 대륙으로 육로를 따라 배급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마·베니스·플로렌스는 유럽의 번영을 집산하는 도시 문화의 중심지였고 영국은 멀리서 그 곳을 동경하는 오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에 걸쳐 명작들을 쓴 「셰익스피어」가 『오델로』『로미오와 줄리에트』 『베로나의 두 신사』 등 상당수의 희곡을 이탈리아를 무대로 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메리카대륙이 발견되어 그곳에 새로운 경제권이 형성되고 아울러 아프리카·아시아로의 항로가 개척되면서 세계의 중심은 그때까지 변방의 외딴섬이었던 영국으로 옮겨갔다.
17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세계지도는 영국을 중심으로 그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런던· 근교의 자그마한 마을 그리니치를 지구의 중심으로 만든 본초자오선의 원점으로 탈바꿈 시켰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버린 그리니치, 천문대의 벽에는 『우주의 혼돈 위에 씨줄과 날줄을 그으니 일월성신은 그 질서 속에 대오를 짓고…』 라는 꽤 오만한 시구가 적혀 있다.
영국이 이처럼 새로 재편된 지리상의 이점을 살려 「해지는 곳이 없는」 세계판도를 구축했던 사실을 염두에 둔 듯, 영국사학자「트레빌리언」은 『역사는 지리가 지배한다』고 그가 집필한 『영국사』 에서 단언했다. 영국은 물론 유럽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옮겨가게 해준 지리상의 재편만으로 저절로 대제국으로 웅비한 것은 아니지만 영국인의 잠재력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항해술의 발달이라는 지리적 변화가 최소한의필요조건을 제공한 것은 분명한 것이다.
지리가 역사를 지배한다는 사학자의 말을 새삼스럽게 기억에서 되살리는 이유는 요즘 한반도주위에서 일고 있는 정세의 변화가 영국이 겪었던 것과 비유할 수 있을만한 엄청난 지리상의 재편을 한반도의 입지에 몰고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를 이야기할 때 맨 먼저 꼽는 것이 세계 4강 세력의 이익이 서로 부닥치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한말부터 우리가 겪어온 역사는 이 부닥침에서 튕겨나오는 불꽃 속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만 받아온 불행한 발자취였음을 우리는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 경험에서 우리는 주변 강대국에 대해서는 피해의식만 축적해 왔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그와 같은 수동적 피해를 능동적 이익추구로 일대전환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있다. 서양인들이 한반도 주변을 「먼 동쪽」 이라고 불렀으나 요즘 동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고쳐 부르고 있는 데서도 그런 변화의 일단을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은 분명 아시아의 변방으로 밀렸던 과거를 벗어나 동아시아에 급속히 형성되고 있는 교역의 고속도로 한가운데로 불쑥 솟아오르고 있다.
우선 83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이 지역 교역량은 서구와의 교역량을 앞질렀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아시아에 대해 갖는 관심은 월남전시대와 같은 군사기지의 유지보다는 경제적 파트너로서의 역할로 옮겨지고 있다. 통상마찰이 시계를 흐리고 있지만 이 큰 흐름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등장할 때까지 집요하게 추구해온 이 지역의 군사력 확대 정책을 이제 경제·외교적 접근으로 바꾸고 있다. 캄란만의 기지사용으로 얻지 못한 영향력 확대를 시베리아 개발작업에 이 지역국가들이 참여하도록 유혹함으로써 얻어보려는 의도가 점점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소련 학자가 동경 세미나에서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서는 일본보다 한국기술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한 것은 「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연설이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서기2050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첫 단계로서 한국이 이룬 성장을 모델로 삼고있다.
일본도 구공시의 통합 움직임과 미국의 보호주의 고조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의 이웃들과 결속을 더욱 다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이렇게 볼 때 과거 한반도를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수단으로 이용해왔던 열강들은 이제 한국의 협조를 구해야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곧 한국인의 의사에 아랑곳없이 저희들끼리 밀고 당기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이 땅이 거꾸로 이들 나라들과의 협력관계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지렛대를 갖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동서 양쪽으로부터의 교통망 안에서 종착점이였던 지금까지의 한반도의 궁핍한 형세는 사통팔달의 세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변 형세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피해의식으로만 보아온 우리의 뿌리깊은 강박관념에서 탈피해야 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앞장서서 외쳐온 주체의식도 지금과 같은 수세적이고 피해 의식적인 것에서 벗어나 대국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는 과제야말로 우리가 어렵게 헤쳐 나가고 있는 민주화와 통일논의의 궁극적 목표라는 점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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