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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재선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비난 쏟아져

중앙일보

입력

야권이 선거를 보이콧한 가운데 20일(현지시간)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마두로 대통령 [AP=연합뉴스]

마두로 대통령 [AP=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67.7%의 득표율로 승리했으며, 야권 후보 엔리 팔콘의 득표율은 21.1%로 마두로에 크게 못 미쳤다. 통신은 “야권의 보이콧 속에서 치러진 탓에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46.1%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이번 선거를 두고 “베네수엘라가 세계에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이는 사례가 될 것”이라 공언했던 마두로 대통령은 재선이 확정되자 “대중의 승리”라 자축했다. 그의 새 임기는 내년 1월 시작되며 6년 동안 통치하게 된다.

버스운전사에서 노동운동가를 거쳐 정치에 입문한 그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밑에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차베스의 후계자’다. 차베스가 숨진 직후 2013년 4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베네수엘라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그는 ‘차베스의 후계자’ ‘빈민의 대통령’이란 후광에도 극심한 경제난과 독재적 행보로 민심을 잃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야권 인사들을 탄압하고 불공정한 선거 운동을 벌인 탓에 주요 야당들이 선거 자체를 보이콧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앞으로 그가 정국을 이끌어나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우파 야권연합 국민연합회의(MUD) 등은 이번 대선을 ‘독재자의 대관식’이라 비판해왔으며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수도 카라카스의 수많은 투표소는 대부분 텅 비어있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며 “많은 베네수엘라인이 이번 선거에 분노하고 있고, 나라를 경제난에 빠뜨린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한 한 50대 여성은 “이번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는다”며 “베네수엘라 정권은 아주 권위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4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마두로 퇴진 시위에서 화재가 발생해 한 여성이 대피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4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마두로 퇴진 시위에서 화재가 발생해 한 여성이 대피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특히 정부가 투표소 주변에서 유권자들에게 ‘조국 카드’(식품 배급과 복지 혜택을 받는 데 쓰이는 카드)를 스캔하도록 한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마두로에 표를 던지면 식료품을 지급하겠다는 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이용해 표를 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로이터통신은 실제 빈민 지역에서는 이 혜택을 받으려는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며 “빈곤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마두로를 지지한다고 답하는 유권자가 많았다”고 전했다. 마두로는 투표 참가자들에게 상을 주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베네수엘라는 불경기의 늪에서 몇 년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최대 자산인 석유 생산량이 감소한 데다 미국의 제재까지 받고 있다. 대다수 주민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그런데도 마두로는 지난해 내내 이어진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원성을 샀고, 제헌의회 투표를 강행하는 등 권위적인 행보로 국제사회에서도 신임을 잃었다. 브라질 등 인접한 국가에선 이 나라 출신 난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등 베네수엘라의 불안한 상황은 중남미 전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WSJ는 “마두로는 경제난이 미국 제재 탓이라고 비난하지만, 경제학자들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정책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며 “이미 수십만명이 베네수엘라를 등지는 등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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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대선을 부정 선거로 규정했던 미국 정부는 마두로 정권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8월, 마두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의 재산을 동결했으며, 지난 8일에도 친정권 기업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가했다.

여기에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주요 국가들도 미국의 압박에 동참할 것으로 보여 마두로 정권은 더욱 고립될 것으로 보인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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